TV에 중계되는 법정을 보며
TV에 중계되는 법정을 보며
  • EPJ
  • 승인 2013.04.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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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은 기업이 재개발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 그 책임을 묻는 형사사건에 필자가 변호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담당판사가 재판 진행 중에 모든 방청객들에게 소지한 물건을 신고하라고 하고 작은 소리만 들려도 재판을 중단하는가하면, 누가 법정을 모욕하느냐며 소리 낸 사람을 찾아 세우고 훈계를 했다.

또 증인을 신문하는 도중에 변호인의 심문을 임의로 차단하고, 2명의 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에게 돈 자랑하느냐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강압적이고 안하무인격의 태도가 거슬려 필자는 변호사 사임을 하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말리는 탓에 참았던 적이 있었다.

근래에 우리 법조가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석궁테러를 다룬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의 방영,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내뱉은 부장판사의 언행, 고학력 여인과 결혼한 남자에게 ‘마약 먹여 결혼했느냐’며 힐난한 판사의 발언 등으로 우리 법조는 이미지가 실추될 대로 실추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법원의 청렴성이나 근무의 엄정성은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 볼 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 법관은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법조와 법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말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대법원은 공개법정을 개최하면서 TV에 생중계했다. 대검찰청 공판부장이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진술을 하고 피고인 측 변호사가 반론을 하며, 양측 참고인에게 대법관이 직접 묻고 답변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면서 언론과 국민을 멀리했던 과거 법원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통상적으로 법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이나 증인의 증언이 맘에 들지 않으면 험한 언행으로 공격을 하거나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생중계되는 법정에서는 그러한 불상사는 일어날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송당사자인 변호인과 검사·판사가 세련된 매너로 재판에 임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서울행정법원은 은행의 현금인출기 관리사업을 하는 회사가 세무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부가가치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서울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개최하고 재판 후에는 재판부가 직접 방청객들과 질문을 받고 답변 해주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로스쿨학생, 지역주민들이 실제로 재판을 접하고 법관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 그 취지라고 한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1월 고흥까지 내려가 ‘찾아가는 법정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친근한 법정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기본적인 방향은 바람직하다. 이런 방향에 공감을 하면서도 주의할 점도 있다. 법정은 모의 법정이 아니므로 어느 한쪽 당사자라도 이를 거부하면 법정 외 재판이나 언론매체에 중계되는 법정은 지양돼야 한다.

또 로스쿨법정처럼 교육적인 목표를 강조하다 보면 본래 재판을 소홀히 하거나 감정에 치우칠 우려가 있으므로 재판절차를 종료한 후 별도의 자리에서 재판에 대한 의견교환이나 재판장과의 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편 특정대학에서 개최하는 것보다는 구청 등 공공건물에서 개최하는 것이 특정학교와의 유착관계를 우려하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법부나 재야법조는 국민에게 법률서비스를 하는 기관이고 그 서비스는 친절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충실하다 보면 사법의 신뢰는 회복될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법원이 소송당사자를 진정한 인격주체로 대접하고, 특히 형사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사람이 존중받는 법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상법교수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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