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사이클 경연대회에서
라이프사이클 경연대회에서
  • EPJ
  • 승인 2012.10.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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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콩트마당(50)

“의정부지점 리라영업소, 강범식, 생년월일은 1975년 6월 27일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9시 50분까지 본사 5층 강당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는 전화를 끊으려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무엇이 있어 다시 물었다.

“참, 그 사람 남자입니까?”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그의 직감과 일치했다.
“아니, 여자입니다.”

내일 아침 10시에 시작하는 라이프사이클(Life Cycle) 경시대회 참가자 명단을 받던 OO생명보험회사 교육부에 근무하는 서른 살 노총각사원 나영수 씨, 여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심장이 마구 쿵쿵거렸다. 틀림없다. 의정부이고 1975년생이라면.

그의 뇌리는 7년 전으로 급히 내다르고 있었다. 나영수 씨가 그 여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대학 4학년 미팅 때 만난 파트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남자 같은 그 이름 때문이었다.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부잣집 외동딸처럼 귀티 나는 얼굴에다, 유난히 크고 예쁜 눈…. 다들 그더러 퀸카를 잡았다고 부러워했었다.

작년에 의정부여고를 졸업,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딸 넷 중에서 막내인데 고추(?) 달고 나오길 바라는 아버지께서 미리 ‘범식’이라고 남자 이름을 지으셨단다.

그녀가 영화를 보자고 해서 종로로 나갔었다. 아마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을 게다. 두세 시간 후에 시작하는 표만 있었다. 극장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암표상이었다. 그녀는 암표라도 사서 지금 바로 들어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그는 요금의 몇 배에 달하는 암표를 사기 위해 호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을 투자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학 4학년이 될 때까지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하숙집밖에 몰랐던 그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학비와 하숙비를 꼬박꼬박 부쳐 주시는 부모님의 노고를 결코 잊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극장을 나와서 애프터 약속도 없이 헤어졌다. 그는 차비가 없어서 5km가 넘는 하숙집까지 걸어와야 했다. 오면서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년! 날 꼬셔서 바가지 씌우고….

한 달쯤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 수돗가에서 밀린 빨래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가 하숙집으로 왔다.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한다. 한 손에 피자를 들고서. 그날, 차비가 없어서 하숙집까지 걸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미안해서 찾아왔단다.

그녀는 빨래를 해주겠다며 그더러 방으로 들어가서 피자를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한사코 말리는 그를 방으로 밀어 넣고 정말 빨래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은 영 딴 사람 같았다. 처음 만났던 날의 분노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쓸개 빠진 사람처럼 그녀가 들고 온 피자를 먹으며 감동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만났다. 사귀어보니 그렇게 고약한(?) 여자는 아니었다. 졸업하고 군대 간다고 했더니 꼭 편지하라고 하면서 그녀의 집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 한 번 편지를 썼다. 답장이 없었다.

그 여자가 의정부 리라영업소의 리라사원이라, ‘리라사원’이란 ‘Life Lady’의 앞 글자 ‘Li-La’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이십대와 삼십대 초반의 젊은 여사원을 중점 육성, 직장을 방문하여 보험을 모집할 수 있도록 정예화 시킨 생명보험 설계사를 이르는 말이다. 리라사원이라면 한 달 수입이 적어도 300만원은 된다. 500만원이 넘는 사원도 수두룩하다.

그는 그날 밤새 뒤척였다. 스물일곱 살이겠구나. 어떻게 변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다음날 아침, 그는 출근하자마자 5층 강당으로 올라갔다. 전국 각지에서 지점 대표로 온 설계사들이 대회장에 모여들고 있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그는 책상을 돌며 참가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차례가 되자, 그 앞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나누어 준 라이프 사이클 용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머리가 짧아진 것 외에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이목구비의 선이 약간 굵어진 것 외에는….

12시에 대회가 끝났다. 그가 다가갔다.

“강범식 씨, 혹시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그녀가 흠칫 놀라며 더듬거렸다.

“어마, 나… 나영….”
“예, 나영수입니다.”
“안녕하셨어요? 우리 회사에 다니시는 군요, 교육부에 계세요?”
“예, 군에서 제대하고 곧장 우리 회사에 입사했죠.”

함께 나가 음식점에서 마주 앉았다. 7년 만이었다.

“훈련소에서 편지를 보냈는데 왜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그가 묻자, 그녀는 의아한 듯이 반문했다.

“아니, 답장을 보냈어요. 좀 늦게 보냈는데 못 받아 보셨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아, 그랬군요. 훈련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배치가 되는데, 자대(自隊)로 간 이후에 편지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답장이 오지 않으니 다시 편지 쓸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그더러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무역회사에 계속 다니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가, 3년 전에 우리 회사에 리라사원으로 들어왔단다. 수입도 괜찮고 시간도 좋아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날 오후,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계속 허둥대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자꾸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퇴근 후에 다시 만나고 싶소.”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설비’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 꾸는 개똥벌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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