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을 따라가다
사냥꾼을 따라가다
  • EPJ
  • 승인 2010.11.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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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 마당 (27)

이웃 아파트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바람이나 쐴 겸 나하고 강원도에 가지 않을래?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춘천에서 일박하
고 홍천 부근에서 사냥하다가 일요일 저녁에 서울로 돌아올 거야. 갈 마음이 있으면 토요일 3시까지 우리 아파트 앞으로 와.”

나는 잠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사냥이라는 말엔 약간 거부감이 생겼지만 따라가고 싶었다.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배가 자꾸 나와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주말마다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게으른 탓에 몇 번 하다 말았고, 요즘에는 사진 찍는 데 취미를 붙이고 있는 참이다. 카메라와 장비를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사진 찍기를 시작한 것은 아직 일 년밖에 안되지만….

“사냥엔 관심이 없지만 따라갈 게. 자네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이나 찍어야겠네.”
고등학교 때, 친구 집 공기총으로 새 몇 마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날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었다. 산짐승을 죽이는 것은 살생이고, 살생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꼭 어머니의 말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후론 한 번도 새를 잡지 않았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친구의 갤로퍼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경춘국도는 차들이 많이 밀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친구가 속해 있는 엽우회 회원들이 삼삼오오 숙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들 얼룩덜룩한 사냥복을 입고 있었고 이들이 타고 온 지프차에는 사냥장비와 사냥개가 실려 있었다.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열한 명이었다. 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이며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내일 사냥에 대해 의논했다.

일행 중에 노엽사 두 사람이 있었다. 생김새가 비슷해서 형제인줄 알았으나 부자(父子)간이었다. 이들이 모두 회장님으로 부르는, 형으로 보이는 사람은 올해 아흔 살이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아들은 칠십 대 초반이었다. 두 사람 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두 사람이 옆방으로 잠자러 들어가자 두 노인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들은 경기도 양평 출신의 멧돼지사냥꾼인데, 엽사 중에는 이들 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단다. 그 동안 잡은 멧돼지가 수십 마리에 이르며, 옛날에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본 적도 있었단다.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아흔이라면 필시 파뿌리가 연상되는 흰머리일 텐데 머리가 검었다는 사실, 또 그 나이에 아직도 멧돼지 사냥터를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많은 살생(?)을 하고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해장국으로 간단히 때운 우리 일행은 사냥터로 향했다. 두 노인은 현지에 대기시켜 놓은 몰이꾼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에 일찍 출발했다고 한다.

목적지 산기슭에 도착하자, 조를 짜서 3-4명씩 나뉘어 출발했다. 친구가 사냥개 캐리를 풀어 놓았다. 캐리는 신이 난 듯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친구가 속한 조를 뒤따랐다. 우리 조 일행은 산기슭에서 흩어져서 억새 숲을 뒤적이며 걸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앞서 걸어가던 캐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한 곳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짤막한 꼬리를 우뚝 세우는 것이 아닌가. 주인에게 총 쏠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 자리에 섰다.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친구가 거총 자세를 취하며 ‘캐리. 들어가!’ 하고 말했다. 캐리가 확- 뛰어 들어가자 꿩이 후루룩 날아올랐다.

“탕!”
저만큼 날아가던 장끼가 곤두박질치며 땅으로 떨어졌다. 캐리가 쏜살같이 달려가 장끼를 입에 물고 주인 앞으로 왔다. 친구가 장끼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어, 이거 제법 오래 묵은 놈이군.”
친구가 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캐리가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었다. 사냥개가 영리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잊고 한동안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것이 사냥이로구나.’
그 순간, 내가 이때까지 간직하고 있던 사냥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즉 ‘사냥은 곧 살생’ 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끼를 날아가게 한 후에 사격을 하는 것인 만큼 나름대로 룰이 있는 정정당당한 게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냥이란 엽사와 사냥개가 마음을 합쳐서 이루어낸 한 편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잡은 장끼를 들고 흡족하게 웃고 있는 친구와 캐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처음 본 꿩 사냥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날 친구가 장끼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두 번 더 보았으나 그 생생한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장끼가 불쑥 나타났고, 카메라 셔트를 누를 준비를 하고 나면 장끼가 벌써 날아가 버렸거나 이미 땅에 떨어지고 난 뒤였다.

오후 세 시에 다시 출발지점 산기슭에서 만난 일행들은 모두 한두 마리씩 꿩을 허리춤에 꿰고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단다. 모두들 만족한 듯 사냥담 나누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조에서는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하고 뒤쫓았으나 결국 놓쳐버렸다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귀경길에 올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 노인이 아흔이라는 나이에도 그토록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산야를 뛰어다니며 늘 신선한 공기를 마셔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야성(野性)이 담겨져 있는 멋있는 레포츠가 아닐까. 그리고 사냥을 살생으로 보는 것은 문약(文弱)한 사람의 어설픈 자비심이 아닐까.

나는 친구에게 다음 사냥 때도 연락하라고 말했다. 몇 번 더 따라다녀 보다가 마음이 내키면 나도 총을 하나 구입해야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뛰어다니면 사냥의 묘미까지는 몰라도 우선 내 똥배가 쏙 들어갈 것이므로….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설비’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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