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입지 필요성 공감… 방법론 온도차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큰 틀에서 국내 풍력 시장 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발의됐던 3개 특별법안이 공전을 거듭하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여야가 함께 유사 법안을 발의하며 병합심사에 들어갔던 1년 전만 해도 기대감에 부풀었던 풍력업계는 현재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20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2만5,783건에 달하지만 처리된 법안은 9,452건에 불과하다. 미처리된 1만6,331건의 법안 가운데 풍력 관련 특별법안 3건이 포함돼 있다.
정기국회나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헌법 제51조에 따라 해당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자동 폐기된다.
4월 총선 이후 21대 국회 임기 만료 시점인 5월 29일까지 한 달 반가량 물리적 시간이 남아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체회의 의결,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 이어 본회의 통과 후 대통령 서명을 받아야 하는 법률 제정 절차상 풍력 특별법안 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다음 22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이나 정부 제안 형식으로 다시 법안이 제출될 수 있도록 정부부처는 물론 지역주민·어민·지자체·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촘촘히 살피는 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다.
21대 국회처럼 여야가 동시에 풍력 특별법안을 발의할지는 미지수지만 정부가 풍력산업 성장을 지원하기로 공언한 만큼 정쟁에 휩싸일 가능성은 적을 전망이다.
기존 사업자 보호 쟁점 입장차 못 좁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풍력 관련 3개 특별법안은 용어와 환경성평가, 인허가의제, 예비지구지정 등 일부 내용에서 차이를 보일 뿐 정부 주도 계획입지를 통한 주민수용성 강화와 인허가 간소화 등으로 풍력 보급을 확대하려는 동일한 입법 취지를 갖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11월 발표한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방안에 정부 주도 입지발굴과 지구지정, 인허가 일괄지원 등 계획입지 방식을 통해 해상풍력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듬해 2월 해상풍력에 초점을 맞춘 2개 특별법안이 발의되면서 앞선 2021년 5월 육상·해상 모두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발의된 특별법안과 함께 본격적인 병합심사에 들어갔다.
정부도 2017년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담긴 계획입지제도의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온 터라 풍력 특별법 제정에 팔을 걷어 붙였다.
해상풍력 개발에 어려움을 호소하던 개발사들은 해외 선도국가와 같이 정부 주도 아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해상풍력 시장 활성화와 맞닿아 있는 법안에 공급망 기업들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풍력 특별법 제정에 정부는 물론 국회까지 나서면서 청신호가 켜지는 듯싶었지만 기존 사업자 권리·지위를 비롯해 신규 민간사업 허용여부, 정부조직 구성 등에 대한 명확한 내용 부재로 국회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특히 기존 사업자 권리·지위와 관련된 내용은 산업부가 수정안을 내놨지만 해당 사업자마다 처한 입장이 달라 업계 의견이 크게 갈렸다. 그동안 수차례 열린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도 기존 사업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조항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 구성 변경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 논쟁이 겹치면서 풍력 특별법안 논의는 시들해졌다.
계획입지 순기능 봐야… 사업자 난립 방지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입지발굴을 통한 수용성 확보와 인허가 단축으로 풍력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특별법 제정에 풍력 업계는 대부분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다만 여러 해석이 가능한 법조문으로 피해를 볼 사업자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기준과 용어정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행령·시행규칙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우선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풍력 특별법 쟁점 가운데 하나인 기존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편입·우대·보상 내용은 각 사업자의 개발 의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차가 다르다.
해상풍력 개발 후 20년간 운영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사업자들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다르게 애초부터 사업권 매각을 통한 수익 창출을 염두에 두고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사업자의 경우 기대엔 미치지 못하지만 보상금을 받는 방식이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풍력 특별법이 무분별한 해상풍력 입지 선점으로 주민갈등을 불러온 꼼수 사업자들의 배불리기에 이용되지 않도록 세밀한 설계가 요구된다.
아울러 풍력 특별법 제정 취지에 맞게 풍력 보급 활성화를 통해 국내 연관 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국내기업 지원·육성 방안도 함께 담아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 결과 앞으로 저비용 개발방식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져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린 국내 기업들이 설자리를 잃을 우려가 있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설치선·배후항만 등 해상풍력산업 육성 측면에서도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계획입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선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 시장 규모에 맞는 배후항만이나 해상풍력 클러스트 구축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방부·해양수산부 등이 관리하고 있는 민감한 정보를 민간기업이 파악해 인허가를 받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이들 부처가 산업부에 검토의견을 전달한 후 최종 입지를 결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정부부처 단일창구 역할을 할 위원회를 통해 해상풍력 난립을 방지하는 한편 기존 사업자가 특별법을 타지 않더라도 개별법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