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곳 물의 도시‘부산’
사계절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곳 물의 도시‘부산’
  • 최옥 기자
  • 승인 2009.01.09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전소 가는 길]한국남부발전(주) 부산복합화력발전소

한반도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부산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도시로 우리나라 제1의 국제무역항이다. 부산은 또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마다 늘 그 자리를 지켜왔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가슴 후련한 바람과 마음 적시는 푸른 바다가 있는 곳. 온화한 기운과 짭짤한 바닷내음이 사계절 감도는 물의 도시, 부산을 찾았다.

1481년 편찬된 풍수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부산은 동평현(당시는 오늘날 당감동 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釜山(부산)이라고 불렸는데 나지막한 산이 바다를 끼고 있어 그 모양이 마치 가마꼴과 같다”고 기록돼 있다.

그 후 기록들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 부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지리학자들은 가마꼴과 같이 생겼다는 산을 두고 지금의 부산항을 끼고 있는 좌천동의 증산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당시 증산은 부산이라는 이름처럼 산봉우리가 마치 가마솥 뚜껑처럼 우뚝 솟은 모양이어서 가마솥 부(釜)자를 써서 부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부산진성을 점령한 왜군이 성을 하나 더 만들려고 떡시루처럼 펑퍼짐하게 꼭대기를 깎아내 지금처럼 편평하게 되면서 이름도 부산에서 시루 증(甑)자를 써 증산이 됐다.

맑은 물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부산은 자연의 향기가 가득한 사계절 휴양지이다. 특히 두고두고 둘러보며 멋스러움을 음미해야 하는 명소들이 많다.


태종대
신선이 살던 곳 ‘태종대’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해안을 따라 9.1㎞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대.

태종대는 신라 29대 임금이자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전국을 순회하던 도중 울창한 소나무 숲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기암절벽 등 이 곳의 빼어난 해안 절경에 심취해 활을 쏘며 즐긴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삼국통일의 정기를 이어받아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어진 절 이름도 그래서 태종사라고 한다. 한 때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라고도 불렸지만 현재는 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 됐다.

태종대에는 해안에 깎아 세운 듯한 벼랑과 기암괴석들이 가득해 약 12만년 전 제4기의 최종 간빙기에 해당하는 이 곳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부산의 자연사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다.

또 태종대는 신라 이후 가뭄이 들 때마다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음력 5월 초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우라 불렀다.

일제시대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됐던 태종대는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돼 오다가 지난 1967년 유원지로 탈바꿈했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됐다.


부산 제일의 관광명소 ‘해운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해운대 해수욕장은 넓은 백사장과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고 있으며 얕은 수심과 잔잔한 물결로 해수욕장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 해운대 해수욕장이라고 할 만큼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이며, 해마다 여름철 피서객을 가늠하는 척도로 이용될 만큼 국내 최대 인파가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해안선 주변에 크고 작은 빌딩들과 고급 호텔들이 우뚝 솟아 있어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여름 휴가철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젊은 열기로 붐비고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 축제를 비롯해 북극곰수영대회, 모래 작품전, 부산 바다축제 등 각종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고 해수욕장 주변에 동백섬, 오륙도, 아쿠아리움, 요트경기장, 벡스코, 달맞이고개, 드라이브코스 등 즐길거리, 볼거리가 많다.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는 ‘동백섬’

원래는 섬이었던 이곳은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됐지만 아직도 동백섬이라고 부르고 있어 옛날 지형을 연상시켜 주고 있다.

일찍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은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이곳의 절경을 찾아 노닐고 그 감흥을 읊어 후세에 전하고 있다.

동백섬을 둘러 산책로가 조성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최치원의 해운대 각자, 동상, 시비를 비롯해서 황옥공주 전설의 주인공 인어상과 누리마루 APEC하우스 등 과거와 현재에 걸친 인적이 곳곳에 베여 있다.

또한 동백섬에서 보는 부산의 근원경은 인상적인데 건너편 미포쪽 해안끝선과 달맞이 언덕,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부산바다의 상징 오륙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예전에 말발굽에 차일 정도로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던 곳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겨울에서 봄 사이에 꽃망울을 맺고 빨간 꽃이 통으로 떨어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회동 수원지’

회동 수원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광경을 선사한다. 이곳은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제격인데 금정체육공원부터 시작해서 수영강 상류~신천교~회동수원지~선동교~철마천~장전3교~장전2교 등으로 순서를 이어가면 대략 20km의 왕복 코스가 형성된다.

체력과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지 멈춘 자리에서 되돌아와도 상관이 없고 길 찾기도 편하다. 회동 수원지 닿기 직전의 오른쪽으로 잘 가꿔진 나무들은 화승그룹 회장의 별장 경계목으로 정성을 잔뜩 담아 길렀다는 것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회동 수원지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야외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회동 수원지는 지난 1967년 완공돼 총 저수량 1,850톤으로 지금은 부산 시민의 식수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승지로서 이름이 높았다. 실제로 수원지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오륜대를 만나고 물 속으로 오륜대 고분군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륜대부터 굽이치는 계곡과 주변의 풍광은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남도 3대 사찰 중 하나 ‘범어사’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남도 3대 사찰로 한국 불교계의 중심지 중 하나다. 금정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제30대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창건, 흥덕왕 때 중건했다.

‘범어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를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금정산 정상에는 항상 마르지 않는 금빛 웅덩이가 있어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산을 ‘금샘(金井)’이라는 뜻의 금정산으로 짓고, 그 속의 절을 ‘하늘 나라의 고기(梵魚)’라는 뜻의 범어사라고 지었다.”

범어사의 대표적 건물로는 대웅전을 꼽을 수 있다. 가늘고 섬세한 조각과 장식이 우리나라 목조건물의 진수를 보여준다. 범어사 경내에는 등나무 줄기가 서로 얽혀 등나무 군생지를 이루고 있다. 4월~5월경이면 등나무 줄기마다 꽃이 만발해 화사함을 더한다. 이 외에 일주문, 당간지주, 석등 그리고 7개동의 전각, 누각, 3개의 문, 10동의 암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백공원 해안산책로

자연의 풍미 선사 ‘동백공원 해안산책로’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이 난세를 피해 해인사로 들어가다 절경에 감탄하고 동백섬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 후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이 바위에 새겨 넣은 이름이 해운대(海雲臺)다. 이후 1,000년 동안 해운대는 당대 명망가들의 별장지로 인기를 모았다.

2006년 부산에서 APEC이 개최되면서 해운대 환경이 새롭게 조성되고 산책길도 좋아졌다.

코스는 해운대 해변과 동백섬을 따라 도는 두 개가 있다. 해운대 해변 가로등을 따라서 잘 조성된 해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좋지만 운동도 할 겸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맨발로 걷는 것도 더없이 좋다.

동백섬 코스는 동이 트는 새벽 햇살을 받으며 바다 바위 위로 전망대를 따라 절경이 펼쳐진다.

달맞이 고개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해운대 해변에서 광안대교의 시원한 모습으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최치원이 새겼다는 암석의 글을 음미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누리마루 APEC하우스를 지나 몇 바퀴 속보로 걷는 것도 좋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달맞이고개 풍경

환상적 드라이브 코스 ‘달맞이고개’

달맞이 길은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목(와우산 중턱)에 위치하는 벚나무와 송림이 울창하게 들어찬 호젓한 오솔길로서, 15번 이상 굽어진다고 해 ‘15곡도(曲道)’라고도 하며 8km에 달하는 드라이브 코스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특히 정월 대보름날에 달빛과 어우러진 바다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데 예전부터 대한팔경의 하나로 ‘달맞이 길 월출'을 꼽아 왔다.

또한 길목 중간부분(정상)에는 달맞이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달맞이 길은 바다와 송림,

그리고 현대적인 갤러리와 카페들이 어우러져있고 특히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길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달맞이 길을 지나 산길을 굽이굽이 돌면 송정해수욕장이 나온다.


싱싱한 생선을 즐길 수 있는 ‘자갈치시장’

일명 ‘자갈치시장’으로 잘 알려진 자갈치어판장은 막 잡아온 생선이 거래되는 곳이다. 건물 1층은 어시장, 2층은 회 센터와 건어물을 판매하고 있다. 싱싱한 고기를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생선회는 직접 활어시장에서 고기를 구입해 횟집에 약간의 양념값과 매운탕 가격을 지급해 먹는 방법이 훨씬 경제적이다.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있긴 하지만, 흥정하기에 따라 가격이나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것 또한 자갈치시장의 묘미다.


서민 애환 녹아있는 ‘점바치골목’

길이 214.63m, 너비 18m인 영도다리는 중앙동과 영도를 잇는 다리로,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이자 다리의 일부분을 들어 올리는 국내 최초의 도개식 다리다.

1932년에 착공해 1934년 11월에 완공을 한 이 다리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세번씩 육중한 몸을 들어올려 큰 선박들을 지나가게 했다. 개통식 때는 이 진풍경을 보기위해 8만명의 구경꾼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가 16~20만명 정도로 추산한 것을 감안할 때 대단한 인파가 몰린 셈이다.

영도다리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피난민의 이정표 구실을 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한국전쟁 당시 영도다리에만 가면 친인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저녁 무렵이면 피난민들이 다리근처를 가득 메웠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이들의 답답한 사연을 들어주던 점쟁이들이 성업했다.

1954년 다리 아래 판잣집들이 생겨나면서 그 때까지만도 노점을 하던 점술가들은 점포를 갖게 됐다. 많을 땐 50명도 넘었다는 점술가들이 지금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서민들의 가슴 깊은 곳 애환이 수십년 간이 영도다리 점집촌에 겹겹이 쌓여왔던 것만은 틀림없을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