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5.03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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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금 읽어라] 남한산성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수성(守成)이 곧 출성(出城)’ 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 <남한산성>의 상징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들이다.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이다. 작가의 전작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두는 반면 3년 만에 선보이는 <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 <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 낸 삶의 이력이다. 이 치욕이 단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지은이: 김훈/출판사: 학고재/쪽수: 384쪽/가격: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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