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계 중소기업부터 살리자
전력계 중소기업부터 살리자
  • epj
  • 승인 2008.11.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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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이제 잔소리가 돼버렸을 정도로 기업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달 우려됐던 대규모 금융위기는 잘 넘어간 듯하지만, 실물경제 위기는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체감경기 불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력계에서도 대표기업인 한전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2,0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전력요금의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전의 내년 적자 폭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고유가와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일어난 수익성 악화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지난 10월 말에는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올해 급여 인상분 220억원 가량(1인당 약 200만원)을 전액 반납하기로 하는 등 초강수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전의 어려움은 곧 바로 한전을 주 수요처로 하는 전력계 중소기업의 경영 위기를 불러온다. 실제로 올해 들어 전력계 중소기업들의 부도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무한경쟁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도한 가격경쟁을 통한 불량 전력기자재가 공급돼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낮아진 가격보다 수백 수천 배의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일례로 올해 상반기 단가 계약을 통해 200억원 이상의 물량을 원가 이하로 추정되는 금액으로 수주한 모 변압기 업체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도산하면서 변압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한전과 국민의 피해는 막심해진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그룹은 쓸데없이 낭비되는 예산은 철저히 아껴야겠지만, 큰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불황일수록 더욱 늘려야 한다.

어느 산업이든 중소기업은 그 산업의 기반이다. 기반이 무너지면 불황을 벗어나도 성장을 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노력은 한전 혼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며, 산업 특성을 무시한 정부의 획일적 예산 감축은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작은 불씨마저 꺼뜨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계약법 상의 최저가 낙찰 원칙의 유연성을 발휘해 원가 이하의 저가 입찰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기자재 공급의 안정성을 꾀해야 하며, 수요처가 한정된 전력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단가 계약 금액의 상한선 설정도 현실에 맞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원자력발전 등 일반 산업과 달리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운영되는 분야는 자국 기자재 제작회사와 공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상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원전을 비롯한 국내 전력산업은 외국 기자재 도입의 문이 너무 넓게 열려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라 피땀으로 기술자립화를 이룩한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기반을, 다량생산을 통해 저가로 공급이 가능한 다국적 기업과 동일한 조건에서의 경쟁시킴으로써 그나마 마련된 국내 기술을 사장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전력계 중소기업의 경우 전력그룹의 입찰에 몇 번 실패하면 수요처를 찾지 못해 생산이 중단되고, 그렇게 되면 다국적기업의 독무대가 돼 버린 전력산업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전력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경우 미국상품 우선 구매원칙이 잘 지켜져 있고, 에너지와 운송산업 등은 외국기업이 진입하기 어렵게 장벽을 두고 있다. 또 외국 기업과 경쟁입찰할 경우에는 미국 중소기업에는 12%, 대기업에는 6%까지의 가격 인센티브를 부여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산업 보호는 온당하지 못하겠지만, 국민의 안전과 산업발전의 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전력산업에서의 국내 중소기업 보호는 국제적으로도 양해되는 부분인 만큼, 정부와 전력그룹의 적극적인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저널 Electric Power 회장 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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