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영화 <허브>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영화 <허브>
  • 신선경 기자
  • 승인 2008.06.11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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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삶을 잊게 해주는 영화와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영화. 만일 영화를 이 두 가지로 나눈다면 <허브>는 당연히 후자다. <허브>는 있는 그대로의 삶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인다. 그 안에는 당신이 요즘 영화들에서 종종 마주쳤을 그것들이 없다.

영화 <허브>의 주인공들은 특별하지 않다. 혼자 몸으로 꽃집을 운영하며 딸을 키우는 씩씩한 아줌마 현숙, 그녀에게 힘이 되는 수다 친구 미자, 뺀질대는 교통의경 종범, 그리고 어른보다 속이 깊은 초등학생 영란과 승원. 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영원한 일곱 살 상은이. 그들은 우리가 한번쯤 만났음직한 우리 곁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건들도 우리가 겪었던 혹은 겪게 될 이야기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엄마와 딸, 사랑에 처음 눈 뜬 시행착오 투성이 연인들, 그들의 준비되지 않은 이별까지.

영화 <허브>는 멀리 가지 않는다. 가까이 있기에 더 신선하고, 꼭 필요한 산소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호러는 물론 드라마나 액션 심지어 멜로에서도 한 드럼씩 등장한다는 피가 <허브>에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시끄러운 소음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다. 길거리 포장마차의 조미료처럼 풍덩풍덩 등장하던 깍두기 머리 조폭도 안 나온다. 심심할 것 같다고? 천만에 말씀.

<러브 액츄얼리>가 지루하던가? <시네마 천국>이 밍밍하던가? 무자극, 무공해 착한 영화라서 지루한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 말을 건넬 줄 모르는 영화들이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지루한 것이다. 영화 <허브>는 자극이 없다. 그러나 지루함도 없다.

시기, 배신, 분노. 영화에서 종종 보여 지는 갈등의 양상들이다. 그런데 과장 없이 새롭고, 자극 없이 재미있는 이 신기한 영화 <허브>는 시기도, 질투도, 분노도 없이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사랑하는 모습이 분노보다 뜨겁고, 위로하는 모습이 배신보다 흥미진진하며, 연약한 주인공이 자라고 홀로 서는 모습이 분노보다 강렬하다. 태풍이 벗기지 못한 외투를 햇볕이 간단하게 벗겨내듯 <허브>의 재미와 감동은 꽁꽁 닫힌 관객들의 마음의 문을 연다.

당신을 행복하게 할 그것들
순수
영원한 일곱 살의 마음을 가진 상은. 어리고 연약하지만 마치 은은하게 가득 퍼지는 허브 향처럼 주변을 순수함으로 가득 물들이는 그녀. 영화 <허브>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일곱 살 상은이의 마음이 되어 세상을 보게 된다. 순수한 일곱 살의 마음으로 동화 속 공주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초등학생 친구들에게 고민을 상담하며 꿈꾸고, 설레면서 자라는 상은.

일곱 살이라는 나이는 왕성한 호기심이 공존하는 나이다. 마냥 어리기만 한 유아에서 세상에 눈을 뜨고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서는 특별한 나이이기도 하다. 바로 그 나이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상은이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 우리가 잊고 있던 그 향기로운 시절을 되돌려 준다.

사랑
영화 <허브>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들이 담뿍 들어있다. 엄마와 딸의 사랑, 친구의 우정, 남녀의 사랑, 인간과 인간의 믿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하고 감싸주는 배려. 그 다양한 온기 속에서 영화 <허브>는 각박하고 거칠다고만 말해지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해준다. 영화가 끝난 뒤 허브 향처럼 가득 퍼지는 행복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이라 약속한다.

감동
장애를 가진 아이는 세상살이가 불행할 것이다. 그런 아이의 엄마는 하루하루가 슬프고 고역일 것이다. 정신지체아를 정상인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신지체아는 세상에 온전히 홀로 설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이 가진 편견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브>는 말한다. ‘지체’는 조금 늦은 것일 뿐이라고, ‘장애’는 조금 더 힘이 드는 것뿐이라고. 늦은 만큼 천천히 세상을 볼 수 있고, 힘이 드니까 주변과 더 속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마치 금방이라도 밟힐 것처럼 연약한 허브 잎 같은 세상에서 더없이 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상은이가 사랑을 한다. 이별을 배운다. 그리고 홀로 선다. 그 과정 속에서 관객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상처가 치유되는, 불가능할 것 같은 모든 소망이 이뤄지는 감동을 만날 것이다.

세상이 몽땅 궁금한 영원한 일곱 살
스무 살 차상은. 이쁘고, 착하고, 종이접기의 비상한 재주도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영원히 일곱 살의 지능이라는 것. ‘정신지체 3급‘이라는 ‘지각생’으로 세상을 배워가는 상은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즐거워하지만 아직 그녀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동화 속 공주 마니아인 상은은 왕자님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다. 어느 날 거대한 머리의 포돌이 인형 옷 속에서 찬란한 미소와 함께 등장한 교통의경 종범을 본 후 그가 ‘야수’에서 마법이 풀린 왕자님이라고 확신하는데... 종범도 그녀가 싫지 않은 눈치다. 처음 느끼는 두근거림에 잠도 안 오고 행복해하는 상은이. 그런데 병원에 다녀오신 엄마는 왜 울고 계신거지?

연기파 배우 격돌, 강혜정 vs 배종옥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강혜정과 배종옥이 영화 <허브>에서 만났다. 그동안 스크린이나 TV브라운관을 통해 그 누구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두 여배우가 극중 일곱 살 지능의 순수한 딸 ‘상은’과 그 딸의 영원한 친구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엄마 ‘현숙’으로 열연을 펼쳤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배우 강혜정과 때로는 세련되게,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게 자신의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베테랑 성격파 배우 배종옥. 연기라면 절대 뒤지지 않는 이 연기파 두 배우가 만나 모녀간의 끈끈한 정을 그려낸 따뜻하고 가슴시린 이야기를 전한다.

촬영기간 내내 정말 엄마와 딸처럼 각별한 교감을 나눴던 두 배우. ‘아’하며 간식을 자상하게 먹여주는 엄마 배종옥과 휴식시간에 그 품에 포옥 안겨 딸처럼 곤하게 잠들었던 강혜정.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서로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 모두 진짜 모녀처럼 정이 뚝뚝 떨어졌던 기적의 앙상블을 만난다.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는 스텝들
<허브>의 시나리오는 연출을 맡은 허인무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에 직접 참여해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음란서생> <형사Deulist> <장화, 홍련> 등에서 참신하고 매혹적인 미술 감각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조근현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참여해 영화 <허브>의 분위기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살린 미술세트를 제작했다. 더불어 <집으로> <빙우> <청연>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섭렵하며 돋보이는 촬영 감각을 선보였던 윤홍식 촬영감독이 두 모녀의 따뜻한 이야기를 예쁜 화면에 담아냈다. 또한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형사Duelist> 등 각 영화마다 특색 있는 음악으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조성우 음악감독이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이처럼 영화 <허브>는 다양한 분야의 최고 스텝들이 모두 참여해 만들어내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최고의 웰 메이드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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