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고 디지털시대에 접목시키는 게 중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고 디지털시대에 접목시키는 게 중요”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8.02.04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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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전기공학부를 가다③] 인터뷰-건국대 전기공학과 남문현 교수

지난 1976년 3월에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에 부임해 오직 한 학교에서 묵묵히 우리나라 전기연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과업을 이뤘고 작년에는 573년 만에 자격루의 복원에 성공하는 등 중요한 업적을 남긴 남문현 교수를 찾아 교단 32년의 얘기를 들어본다.

▲32년째 건국대에서 후학들 지도에 전념하셨는데 퇴임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난해 말에 내가 몸담고 있는 전기공학과 총동창회 창립식장에 참석해보니 옛날 제자들이 전기 분야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어 참으로 대견스럽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 7,80년대의 어려운 시기를 사느라 학생들에게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는데 사회의 중견 인재로 일하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찡하더군요. 제가 1976년 3월에 부임해 올 2월말에 퇴임하게 되니 햇수로는 32년이 되는군요. 참으로 변화가 많은 세월이었지요.

처음 부임했을 때는 전임교수가 김한성 교수님 한 분이셨는데, 그것도 폐과됐던 전기공학과가 복과함에 따라 제가 부임하게 됐지요. 학생도 20여명(당시 전자공학과 안의 전기공학 전공으로 연명)에 불과했습니다. 제 뒤를 이어 임한석, 한득영 교수님이 부임함에 따라 학과도 모양새를 갖추게 되고, 정부의 중화학공업정책에 따라 신입생수도 대폭 늘어나게 됐었지요.

80년대 들어서는 실업계고교 출신을 야간에 입학시키는 정책으로 주야간 학생이 학년 당 150명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주야간 모두 강의하느라 교수님들이 연구와 학생지도 하실 틈도 없을 정도였고 취업도 무난히 잘 됐지요.

80년대 들어 정부에서 교수들을 해외에 파견하는 정책으로 변해감에 따라 전기공학(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교과과정도 세계적인 흐름에 따르게 됐습니다.

그 후 학부제 실시로 전자, 컴퓨터학과와 통합됐다가 다시 분리되는 과정에서 전기공학은 인기가 없는 학과로 지망자수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늘에 보면 오히려 전기공학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도움이 됐다고 할까요. 30년 동안 전임교수도 아홉 분이 늘어 학생들이 에너지, 전기기계, 재료, 제어, 컴퓨터 등 여러 분야를 골고루 수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일찍이 전기역사와 기술문화에 관심이 있어 우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발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자격루 복원과 우리 전기공학의 뿌리인 전등소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두 가지 과제가 지난해를 기해 마무리 돼 개인적으로는 매우 행운으로 여깁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동료 교수님들의 협력과 이해로 오늘 무사하게 퇴임하게 됐습니다. 더구나 저는 바이오공학과 자격루 연구로 저희 학과는 물론 기계, 역사, 문학, 의학 분야의 교수님들과 접촉이 많아 학문생활을 좀 폭 넓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니 무엇보다 인화가 가장 중요한 것도 알게 됐습니다.

▲자격루의 복원을 시도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이지.
전공이 마침 제어와 바이오 공학이다 보니 학문의 뿌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80년대에 사회 각 분야에 불어 닥친 한국학 붐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제어공학에 대한 역사를 알고 싶었지요.

마침 대한전기학회 계측제어시스템연구회 간담회에서 자격루 연구를 권고하기도 해 한 1년만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1984년 여름에 제가 해오던 신경제어공학 연구와 병행해서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역사학자들과도 접촉해 역사연구의 방법론도 터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대학 사학과의 이주영 교수, 중문과의 이수웅 교수, 서울대의 이태진 교수 등과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은사이신 스타크(Lawrence W. Stark, 1924-2005)교수님께 허락을 구하고 조언도 얻기도 했지요.?

▲작년 573년 만에 자격루 복원작업에 성공한 소감과 그 의의는 무엇인지.
첫째, 장영실과 자격루의 명성이 名不虛傳임을 확인했고, 우리 역사의 황금기인 세종 치세의 업적을 규명하는데 기여, 신비에 쌓였던 자격루의 실체를 규명한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둘째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특히 자격루는 한민족의 과학창조성, 우수성을 대표하는 발명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셋째로는, 공학 분야에서도 역사연구에 참여할 권한을 확보했다는 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술사가’는 인문학자들이 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역사의 틈새를 등불로 비춰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사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윤택해졌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요.

▲‘전기공학의 발전이 더디다’라는 일부의 평에 대한 견해는.
지난 20세기 말에 미국공학한림원에서 20세기를 빛낸 공학기술을 조사했는데 20개의 기술 가운데 전기 전자 통신 컴퓨터 등 주로 전기공학에서 파생된 분야기 반을 넘었고 1위는 전화(電化, Electrification)였습니다.

그동안 세계가 전선으로 뒤덮이지 않았습니까. 그 만큼 20세기에는 전기공학의 공헌이 컸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21세기 들어서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평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회발전의 기본인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전기는 그 역할이 강화되면 되었지 결코 퇴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신생에너지 분야 등 발전의 소지는 무궁무진하고 발전의 속도도 결코 더디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전기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난 세기의 좋은 시절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잘 타고,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입각한 새로운 전기 문화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 전기인의 앞날은 밝을 거라고 봅니다.

▲전기공학의 발전을 위해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모든 일의 성패는 인사가 좌우하듯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전기공학을 전공하도록 유치할 수 있는 환경과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음은 지속 가능한 성장분야의 발굴과 연구개발입니다. 이것은 비단 전기분야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사회발전을 선도해온 전기인의 긍지를 갖고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기인들은 사회변화에 대해 둔감했다고 할까요, 적극성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21세기는 시간과 공간이 파괴되는 시대입니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고 이것을 디지털시대에 적합하도록 조화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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