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화의 진작과 민주주의
토론문화의 진작과 민주주의
  • EPJ
  • 승인 2017.01.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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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은 원래 웅변술로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art)을 의미한다. 기원전 4~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 발달했으나 언어의 마술로 대중들을 홀리는 궤변술이란 비난을 받으면서 플라톤 등으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 단순한 말하기나 설득의 기술이 아니며, 사실과 정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라면서 수사학을 옹호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필자는 현재 미국에 머물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연방의회나 상임위원회의 각종 토론과 지방 의회와 교육위원회의 멤버들 간 열띤 토론을 자주 접하고 있다. 특정 방송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책에 관해 주제를 발표하고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모습을 방영하기도 한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UC Berkely의 학생들은 정규수업 이외에도 매주 특정한 이슈에 대해 전문가·언론인·책의 저자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고 토론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교수의 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고, 외부전문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이곳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질문하는 방식의 토론문화를 자주 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토론문화 정착이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왜곡된 형태로 통치를 하고 있어 국가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대면보고’가 꼭 필요하냐고 반문하자 배석했던 국무위원들이 멋쩍게 웃어넘기는 장면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창조경제의 정의를 정립하지 않은 채 새로운 행정부처를 신설하고, 그 부처 장관이 2년 수개월동안 한 번도 대통령과 일대일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부처는 어떤 방향키를 잡고 일을 해 왔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정무수석이나 외교안보수석도 대통령을 일대일로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정치가 요동칠 때 대통령은 정무수석 비서관을 만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일까?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실험이 반복됐는데 외교안보수석의 의견은 필요 없다는 말인가?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청와대회의에 참석한 고위공직자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미리 올린 자료를 읽을 뿐이고 토론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실질적인 토론이 배제된 형식적인 회의나 의견수렴의 결과는 그 내용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참모나 보좌진은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고, 정작 본인은 일어서서 장시간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지방에 가면 대학생이나 시민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해진 원고가 아닌 즉석 토론과 연설을 즐겨한다. 퇴임은 앞둔 그는 지지율 60%를 넘기며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토론이 항상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과거 궤변술로 불렸던 만큼 감미로운 언어로 청중을 오도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당사자들은 토론의 기술적인 측면을 중요시 여기기보단 정직성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감성 그리고 논리적이면서도 사실에 근거해 정의에 합치되는 결론을 도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토론을 권장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보다 자유롭게 권장하는 사회로 성숙하길 바란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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