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조(法曹)를 돌아보며
지난해 법조(法曹)를 돌아보며
  • EPJ
  • 승인 2016.01.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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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바뀌어 붉은 원숭이의 해가 됐다. 지난해를 떠나보내며 많은 사건의 기억 때문인지 시원섭섭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이르는 ‘혼용’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다는 의미인 ‘천하무도’(天下無道)의 ‘무도’가 합쳐진 말이다.

연초 메르스로 인한 국가와 의료계의 혼란, 국회에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권을 허용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여당 원내대표 사퇴 압력에 따른 정치권 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이어 최근 한·일 정부 간 위안부협상 타결 등이 그 원인이라 생각된다.

제대로 된 도리가 무시되는 무도는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법조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류로만 사건이 진행되는 개인회생이나 파산사건만 골라 수억원의 수임료를 챙긴 무자격 사무장들과 이들에게 명의대여를 한 변호사, 경매꾼들에게 고용돼 전문가자격을 대여하고 대여료를 챙기는 변호사, 가진 것이 돈밖에 없는 피고인들이 유치장에 있기 싫어 잡담과 시간 때우기 면회를 위해 고용된 집사 변호사 등이 논란을 불러왔다.

또 브로커가 물어오는 사건의 소개비를 지불하면서 생계를 이어간 변호사와 공탁금을 횡령하는 등 재산범죄를 범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지 이뿐이 아니다.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할 재판장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하고, 맘에 들지 않는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검찰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가 징계를 받았던 검사를 다시 감찰에 회부한다든지, 정치적 사건처리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세간의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출신 대법관이 퇴임 후 단기간에 많은 변호사 수임료를 받은 사유로 총리후보에서 낙마했고, 대법관 청문회 때는 퇴임 후 개업중단 선언을 하라고 압박하는 아름답지 못한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지난해 하반기 사법시험폐지 여부를 놓고 법조계는 패를 나눠 지성과 양심을 내팽긴 채 진흙탕 싸움을 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어떤 법률가 양성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법시험은 공정하지만 젊은 청춘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담보로 붙잡는다는 문제가 있다. 로스쿨제도는 다양한 전공영역을 배경으로 하는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성문법계인 우리나라에서 3년 내에 기대하는 만큼의 능력 있는 법률가가 탄생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하지만 변호사단체가 갈리고, 법무부와 법원이 견해를 달리하며, 로스쿨 학생과 법과대학생이 사생결단으로 논쟁하는 모습은 부끄럽기만 하다. 정의의 저울을 들고 사회 부조리와 악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할 법조인이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솔로몬 왕이 환생해 지혜로운 판결이라도 내려줬으면 좋겠다.

북한 지도자가 통일을 언급하는 신년사를 강조했다는 기사를 봤다. 통일시대 법률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통일 헌법을 만들어야 하고, 남북한 간 토지제도와 소유권·상속권을 어떻게 풀 것인지 고뇌해야 한다.

법률가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법률가는 정의의 여신상 ‘디케’가 들고 있는 힘 있는 칼과 공평함의 분신인 저울의 의미를 새기며,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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