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와 예금반환청구권자
금융실명제와 예금반환청구권자
  • EPJ
  • 승인 2015.12.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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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의 명의를 빌려 금융기관과 예금계약을 체결한 경우 실제 예금주로서 반환청구권자는 누구일까?

예금계좌를 개설할 당시 작성된 예금거래신청서의 신청인 란에 아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고 아내의 주민등록증 사본이 첨부돼 아내 명의의 예금통장이 발급됐고, 은행 거래내역 현황에 아내가 예금계좌의 권리자로 기재됐다.

한편 위 계좌에 입금된 돈은 다른 금융기관에 개설된 남편 명의의 계좌에서 인출됐으며, 예금거래신청서상의 거래인감은 남편 인장을 사용해 등록했다. 비밀번호는 남편의 다른 예금계좌의 비밀번호와 동일하고, 이 건의 예금계좌 이자는 남편 명의의 다른 예금계좌로 자동이체 되도록 했다.

이 사례처럼 남편이 예금거래신청서를 작성한 경우 예금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다투었던 사건(대법원 2009. 3. 19. 2008다45828)을 소개한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예금계약에 따른 예금반환청구권을 갖는 예금주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예금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실명확인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에 명확히 기재된 경우 그 예금계약서에 예금주로 기재된 예금명의자나 그를 대리한 행위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는 것이 경험법칙에 부합한다.

이런 일반적인 법리에서 벗어나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뤄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해 예금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인정받으려면 다음을 만족해야 한다.

우선 금융기관과 출연자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뤄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해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해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돼야 한다.

아울러 이런 의사의 합치는 예금명의자와 금융기관 간 예금계약서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예금계약을 체결한 후 출연자 등이 예금명의자에게 예금통장과 거래인감도장을 교부하지 않고 자신이 소지하고, 예금의 이자나 원금을 자신이 인출해 왔다는 사정만으로는 금융기관이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거나 그 출연자와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예금계약 체결 후 예금통장과 도장·비밀번호 관리, 예금 인출 등에 관한 사정은 예금명의자와 출연자 사이의 내부적 법률관계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사정만을 근거로 예금의 실주인을 출연자로 확정할 수 없다.

위 판결에 따라 법원은 금융실명법 제3조 제1항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명에 의해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임의규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출연자가 실질적인 예금주가 되기 위해서는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와의 예금계약을 체결해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의사 합치가 명백히 증명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금융실명제 아래서 예금계약의 실소유주로서 반환청구권자가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를 폭넓게 허용할 경우 금융실명법의 취지가 왜곡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에 따라 금융기관이 출연자가 예금소유주임을 알고 금융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출연자를 예금실소유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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