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예방보다 사후 처리가 우선?… 이상한 풍력설비 관련 기준
사전 예방보다 사후 처리가 우선?… 이상한 풍력설비 관련 기준
  • 박윤석 기자
  • 승인 2015.1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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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시스템에 화재방호설비 설치 의무화
“브레이크 파손된 차량에 에어백 무슨 의미”

▲ 대한전기협회 풍력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인 강용철 전북대 교수가 풍력시스템 보호를 위해 신설된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기준 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내년부터 자동소화설비를 갖춘 풍력발전시스템 사용이 의무화된다. 사용전검사 절차에 화재방호설비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필수점검 항목이 추가되기 때문에 이를 어길 경우 상업운전이 불가능하다.

전기설비기술기준 관련 업무 전담기관인 대한전기협회는 11월 26, 27일 양일간 서울 송파 소재 사옥에서 ‘제10회 전기설비기술기준 기술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기술기준 및 판단기준 제·개정(안) 주요내용을 발표했다.

기술기준 및 판단기준 제·개정(안)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겸해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 않음에 따라 신설된 소화설비 설치 조항은 이르면 내년 1월 중 고시·공고된 후 바로 적용될 예정이다.

한편 풍력업계는 이번에 신설된 화재방호설비 시설 조항과 관련해 정부가 임기응변식 대처만 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화재로부터 풍력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근본적으로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정기안전검사를 제도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사전 예방보다 사후 조치와 관련된 기준이 먼저 마련된 상황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브레이크가 파손된 차량에 에어백만 여러 개 달아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화재가 발생한 풍력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을 토대로 유형별 예방대책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 풍력시스템 화재방호설비로 사용되고 있는 고체에어로졸 제품
2016년부터 신규 풍력설비만 적용
풍력시스템 보호를 위해 이번에 신설된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기준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500kW 이상의 풍력설비는 나셀 내부에 화재 발생 시 이를 감지하고 소화할 수 있는 화재방호설비를 갖춰야 한다.

신규로 설치될 풍력시스템에 한해서만 적용되며, 이미 운전 중인 풍력시스템 가운데 화재방호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는 권고 대상이다.

화재진압 방식은 특정하지 않고 업계 자율에 맡겼다. 현재 풍력시스템에 적용되고 있는 화재진압 방식으로는 물 또는 소화성분을 이용하거나 산소를 차단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화성분을 분사해 불을 끄는 소화설비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500kW 이상 풍력시스템으로 규정한 이유는 소방용 고가사다리 차량의 최대 화재진압 높이(약 50m)를 고려한 조치라는 게 전기협회 측 설명이다. 실제 대부분의 중대형 풍력시스템 나셀은 50m 이상에 위치해 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풍력시스템의 안전문제가 최근 도마 위에 오르자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10월 전기협회에 기술기준 개정(안) 마련을 요청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제주 행원풍력과 인천 영흥풍력에 이어 지난 7월 제주 김녕풍력에 설치된 풍력시스템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십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정기안전검사 도입 필요
풍력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풍력시스템에 소화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 다만 소화설비를 설치할 경우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도록 설치 가이드라인 정도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가 일부 있을 뿐이다.

화재방호설비도 필요하지만 화재 예방차원의 정기안전검사가 얼마나 더 중요한지는 지난 7월 김녕풍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를 보면 알 수 있다.

김녕풍력단지 운영을 맡고 있는 제주에너지공사는 당시 화재원인을 브레이크 시스템 불완전 작동에 따른 과열 때문으로 결론지었다. 다만 브레이크 시스템이 왜 불완전하게 작동했는지에 대해서는 주요 부품인 유압시스템, 제어기 등이 전소돼 규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재 원인인 로터디스크와 캘리퍼 간 마찰에 따른 과열은 제어시스템 부분에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브레이크 패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캘리퍼에 불이 붙을 정도로 과열됐다는 것은 제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부터 제어시스템 부분에 이상이 발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내재한 채 운전 중이었던 셈이다. 제어시스템의 경우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단순한 유지보수 작업을 통해서는 이상 유무를 점검할 수 없다.

현재 국내 풍력시스템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4년에 한번만 검사를 받으면 된다. 이마저도 전기 부분에 치중돼 있어 풍력시스템 전체의 안전상태를 점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든 또 김녕풍력과 유사한 화재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하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대형풍력단지에 대한 정기안전검사를 2년마다 실시하도록 제도화했다”며 “이 같은 정기안전검사는 풍력시스템의 안전한 운전은 물론 풍력단지 운영 효율화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대비 효과가 큰 작업”이라고 국내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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