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20세기말 한국사회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20세기말 한국사회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11.19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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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 있는 공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난 원래부터 공연이나 영화 등, 땀 안 흘리고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문화부 기자의 특성상 공연을 볼 기회가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십 편의 공연을 봐 왔고 많은 리뷰 기사들을 써왔다. 때문에 미약한 눈이나마 나름대로 공연을 평가하는 시선과 비판의식은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소위 잘 나가는 뮤지컬 공연이란 그 느낌이 무척이나 가벼워서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흔한 러브스토리거나 쉽게 다룰 수 있는 가족애, 아니면 천편일률적인 성공 드라마가 그 주종을 이룬다. 심지어 대학로에 가면 텔레비전속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대로 재공연 되거나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코너를 텔레비전에 올릴지 말지 결정하는 도구로서의 공연도 성행하고 있다.

뭐 딱히 이런 각본을 비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7~80년대 희곡의 무게감이 사라진 우리네 연극판, 생각할 수 있는 공연을 피하고 가벼운 춤과 노래와 위트만을 선호하는 관객들의 취향이 조금은 걱정스럽다. 물론 당시의 연극판이란 정치적 의식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어두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도 부조리는 많다. 좋은 공연은 의식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기된 얼굴로 나올 수 있는 공연이라야 한다.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성공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빛난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공연이 아닌 우리네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계몽과 풍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뛰어넘은 강렬한 정서적 공감으로 세계로 나간다

<아침이슬><상록수> 등 1970년대 민중음악의 아버지로 이름 높은 김민기가 번안·연출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그립스 극단의 <Line1 - Musikalische Revue>를 한국적 상황에 맞춰 번안한 작품이다. 1994년 초연 이후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장기공연을 계속해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330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65만 여명(2007년 4월)의 관객들과 만났다.

2000년에는 독일 원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전액 면제 받으면서 그 독자성을 대외적으로 공인 받기도 했다. 이후 2001년 독일에서 해외 첫 무대를 가진 <지하철 1호선>팀은 극찬을 받으며 세계 공연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같은 해 중국과 일본 등지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또한 2003년 3월에는 국제규모 예술 축제인 홍콩 아츠 페스티벌에서 한국 연극·뮤지컬로는 최초로 초청돼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고,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올림픽인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지금의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힘 있는 뮤지컬”로 평가받았다.

한편, 지난 3월 22일에는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독일연방공화국의 문화훈장인 ‘괴테메달’을 수상하면서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Volker Ludwig)로부터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여 원래 정신을 드러낸 사람은 김민기가 처음이며 <지하철 1호선>은 원작보다 더 강하고, 시적이면서 슬프다”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연변 처녀의 눈에 비친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연변 처녀 ‘선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실직가장, 가출소녀, 자해 공갈범, 잡상인, 노숙자와 창녀, 강남의 사모님 등 바로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들은 익숙하고 절제된 연기와 노래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요소요소에 배치된 웃음의 코드도 진지한 극의 구성과 어울려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뿜어낸다. 기저귀 찬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그야말로 폭 넓은 연령대를 보여주는 80여명의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는 10여 명의 배우들의 변신은 말 그대로 놀라운 수준. 게다가 그들이 보여주는 인물들이 모두 하나같이 생동감이 넘치고 극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니 더욱 놀랍다.

더불어 5인조 록밴드 ‘무임승차’의 강렬한 라이브 연주 또한 매력이다. 록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완성시키는 그들의 라이브는 사회 풍자극이라는 장르에 녹아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더불어 열정적인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한다.

이처럼 극 전편에 흐르는 따뜻한 시선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사회 비판적 메시지, 이와 함께 수준 있는 배우들과 폭발적인 라이브로 오랫동안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이 걸작은 이만하면 공연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뮤지컬이라 칭할만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뮤지컬 치고는 춤의 영역이 무척이나 빈약하다는 점인데,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3시간 가까운 공연시간이 좀 더 꽉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장소: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
기간: 상시 공연 중
관람시간: 평일 7:30 / 토 4시, 7:30 / 일 4시 / 공휴일 3시 7시
관람료: 일반 30,000원 / 대학생 24,000원 / 청소년 18,000원
20인 이상 단체 20% 할인, 65세 이상 20% 할인, 장애인 20% 할인(동반 1인 포함)
문의: 학전 (02-763-8233,
www.line1.co.kr)
출연: 김태형, 손현정, 이일진, 임진아, 박학주, 이성욱, 김명준, 김종구, 정문성, 김지연,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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