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한반도 문화의 보고, 경주에 가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한반도 문화의 보고, 경주에 가다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11.19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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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가는 길]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경주는 신라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역사의 보고이자 삼국 문화의 총체이다. 때문에 방사선폐기물처분장 착공식에 앞서 월성원자력본부를 찾으면서 주변 관광지 소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국사, 석굴암 등을 소개하는 것은 너무 식상하고 평범한 안내 팸플릿이 될 것만 같고, 그렇다고 월성원전이 자리잡고 있는 경주시 양남면만 소개하기에는 너무 많은 역사를 안고 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양남면의 해수욕장, 휴양림과 함께 문무대왕릉, 감은사터 등이 들어서 있는 양북면을 함께 소개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즈넉한 해변과 함께 경주라는 도시가 가진 문화를 함께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찾은 경주. 기와지붕을 한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 기분이 차분해지는 게 ‘눈으로 보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자’라는 생각이 절로 샘솟았다. 옛 선인들의 숨결이 바람에 실려 날 시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감은사지 전경
문무대왕의 호국사상을 받들어 완성된 감은사터와 감은사 3층 석탑

감은사(感恩寺)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火葬)해 동해에 장사 지내라’ 유언했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 지낸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완성시킨 사찰이 감은사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게끔 금당 밑을 특이한 구조로 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 부왕에 대한 신문왕의 존경심과 경외심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금당 앞에 동서로 서있는 삼층석탑은 높이가 13.4m로 장대하며 제작 연대도 확실하다. 두 개의 석탑은 현재 국보 112호로 지정돼 있으며, 화강암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모습으로 동서 양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이 탑은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양식으로 가람(伽藍)배치가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최초의 작품으로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수십 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됐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 가서 본 감은사터는 말 그대로의 절터로 왠지 휑하다는 느낌이었다. 볼 것이라고는 석탑 두 개가 전부. 석탑의 규모나 풍취는 나름 운치가 있었지만 그나마도 왼쪽 석탑은 보수공사 중이라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현재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해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을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라고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호국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문무대왕릉
“내 죽으면 용이 되어 왜적들에게서 내 땅을 지키리” 문무대왕수중릉

감은사를 뒤로하고 수려한 신라석탑 구경도 좀 더할 겸 장항리사지서 오층석탑을 찾았다. 국보 236호로 지정돼 있는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탑으로 9m 높이의 5층 석탑이다. 이끼 낀 석탑의 구석구석이 옛 신라의 고풍을 담고 있는 듯 수려하다.

아까의 감은사 3층탑이 신라 진골의 고고함을 담고 있다면, 장항리사지서 오층 석탑은 지방 감찰관의 안온함과 여유로움을 닮았다고나 할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평화로워지는 느낌의 석탑이 가만히 날 내려다보는데 콧속에 신라의 향내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문무대왕릉으로 가는 길에는 오징어를 내다 말리는 아낙들의 손놀림이 한창이다. 길게 늘어선 빨랫줄에 걸린 오징어들이 오묘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우리네 어촌의 정취를 돋운다. 마침 길가에 마른 오징어를 파는 아저씨가 있기에 오징어 한 축(20마리)을 샀다. 저녁에 경주에서 유명한 법주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면서 뜯을 생각에 벌써 군침이 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어도 한참 지났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식당에 들릴 시간은 없고, 경주에 온 김에 집에 들고 가려고 사놓았던 황남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흔히 경주빵이라고 알려진 황남빵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경주 황남동에서 만들어 파는 빵이라 해서 황남빵이 됐다고 한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팥이 무척이나 달콤하다. 차 안에서 서둘러 요기를 하고 문무대왕릉에 도착했다.

잘 알다시피 문무대왕릉은 살아서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죽어서는 용이 되어 왜구를 막는 나라의 수호신이 되고자 한 염원이 깃든 수중릉이다. 멀리 보이는 대왕암에는 불교식 화장으로 치러진 문무대왕의 유골이 묻혀있다.

이 수중릉으로 인해 감은사가 문무대왕의 원찰이 되고 이견대(문무왕의 해중능묘를 망배(望拜)하기 위해 지어놓은 정자)가 세워졌다고 한다. 하얀 물보라가 이는 문무대왕릉에는 만파식적을 만든 푸른 대나무가 솟아났던 대왕암 바위 위로 신라의 아득한 설화들이 안개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쓸쓸한 늦가을의 해수욕장, 경주 최남단 관성 해수욕장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을 뒤로 하고 경주 최남단 해변에 위치하고 있는 관성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곳은 맑고 푸른 청정해역으로 이미 인정받은 바 있는데, 송림과 해안이 적절히 어우러져 반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늦은 가을, 해수욕장은 고즈넉하고 포근했지만 또한 쓸쓸했다.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학교 교실의 느낌이랄까. 여름이 아닌 계절, 특히나 늦은 가을이나 겨울에 보는 해수욕장의 느낌은 대부분 이런 쓸쓸함을 안고 있는 것만 같다. 격정을 인내한 후 찾아오는 평화나 여운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한때의 환호와 화려했던 날들을 끊임없이 추억하는 은퇴한 여가수의 감성이다.

남들은 겨울의 해변이 운치 있고 멋지다고만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슬프다. 비단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라면, 내가 너무 감성적이기 때문일까? 참고로 관성해수욕장 인근 양남면 신대리에는 골프장, 콘도, 놀이시설 등 양남관광지가 있어 해양 레저와 함께 여가를 즐기기에 좋다고 한다.

▲ 토함산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숙박시설
경주 3대 성산 중 하나, 토함산 자연휴양림

서울로 올라오는 길. 양남면을 막 지나갈 때 즈음해서 토함산 자연휴양림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1997년 개장한 이곳은 123만m², 1일 수용인원 300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휴양림으로 소나무 등 침엽수림 외에도 다양한 활엽수와 수목이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활엽수 삼림욕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휴양림에는 5.18km의 등산로를 비롯해서 숲속 완만한 경사에 야영장이 있고 숲속의 집, 삼림욕장, 전망대, 체력단련시설, 배드민턴장, 물놀이장, 캠프파이어 등을 갖추고 있으며 임산물판매장, 민속놀이마당 등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면서 소개도 함께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하루하루 바쁜 기자 생활에 있어서 그런 기대는 욕심일 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괜스레 엑셀을 힘주어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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