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톡톡]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핵주권’ 첫발 내딛다
[전력톡톡]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핵주권’ 첫발 내딛다
  • EPJ
  • 승인 2015.05.13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이로써 1973년 발효된 양국 간의 원자력협정 내용이 새롭게 바뀌게 됐다.

양국은 2010년 10월 1차 협상 이래 4년 6개월 간 끌어온 줄다리기 협상을 최근 마무리했다. 그동안의 협상은 가지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 간의 팽팽한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원자력이 갖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양국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길었던 시간만큼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타결이 갖는 의미는 분명 크다. 일각에서는 협정 만료시한까지 연장하며 얻어낸 결과치고는 진전된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 5위 원전 사용국이자 수출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계기로 핵주권 확보의 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또 한 차례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은 우리나라가 전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거나 수출·관리·이용 등에 있어 일방적으로 통제를 받는 내용이 주였다.

반면 새로운 원자력협정에는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 ▲원자력 연구개발 자율성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금까지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미국의 통제 아래 이뤄졌다면 협정이 개정되면서 우리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다.

우선 양국은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한미 합의를 전제로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까지 저농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번 원자력협정 개정에 따라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시험·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핵연료를 농축·재처리할 수 없도록 한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현재 실험단계 수준인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개발도 앞부분 공정은 미국의 동의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분야에서 자율적인 연구개발이 부분적으로 가능해진 점은 우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어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 평가할 만하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국내 연구시설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위한 전단계로 사용후핵연료의 특성연구 등 각종 시험을 하고, 파이로프로세싱 전반부의 핵심 공정인 ‘전해환원’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양국이 합의한 점이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개발은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여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국내 상황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기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기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인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재처리방식(습식)과 달리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이 어려워 미국이 우려하는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사전에 불식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우리나라가 핵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첫발을 내딛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은 상황이다.

최근 몇 년 국내 원자력계는 비리와 잇단 사고로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로 마련된 원자력협정을 계기로 과거 원전 수출의 기적을 다시 한 번 일궈내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월간저널 Electric Power 회장 고인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