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벽을 뛰어 넘어 벅찬 감동과 만나다
분단의 벽을 뛰어 넘어 벅찬 감동과 만나다
  • 박재구 기자
  • 승인 2007.10.11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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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력노조 주관 전력전문기자단 금강산 연수기①

▲ 우리나라의 동해안도로남북출입사무소 모습.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지정된 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한으로 넘어가게 된다
2007년 9월 4일, 39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반복해서 만나왔던 아주 평범한 이날이 앞으로 는 아주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단절감을 실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같은 피가 흐르는 한 민족이기에 그리움 반, 두려움 반으로 한 번은 밟아 보고 싶었던 곳, 북녘 땅을 분단의 상징인 삼팔 군사분계선을 넘어 온몸으로 맞이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금강산 방문은 한전 전력노조에서 마련한 전력전문기자단 금강산 연수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행선지는 금강산 관광구역. 비록 남북이 합의를 통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관광구역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관광구역이지만 엄연히 이곳도 북한 땅. 첫 북한 방문을 앞두고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몸이 떨림을 느낀다.

아직 단 한 번도 북한 사람-이 말에는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많이 묻어난다-을 직접 만나본적이 없는 탓에 그들과의 만남이 무척이나 기대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두려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어떻게 맞아줄 지 상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미 몇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전력노조의 이경호 국장은 별반 다를 게 없다며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을 하지만 어찌 그런가? 난 처음이기에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데 말이다.

서울에서 출입증을 발급받는 현대아산 휴게소까지 가는 동안은 그나마 마음이 가볍다. 하지만 현대아산 휴게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잠시 후면 북한 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조금씩 더해져만 간다.

현대아산 휴게소에서 출입증을 발급받고 동해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로 이동한다.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니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은 엄연히 외국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마음은 이웃집에 마실 나가는 것 같은데 현실은 여전히 총구를 겨누고 있는 분단의 반쪽이라는 차가움을 안겨준다.

▲ 금강산 관광구역에 도착에 처음 들린 장전항(고성항이라고도 한다)의 모습. 장전항에서 바라본 구름에 가린 금강산의 모습이 일품이다
두려움과 감동을 안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의 땅에 들어서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은 하루 몇 차례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만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남측 철책을 지나 비무장지대를 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측 비무장지대로 접어들고 곧이어 북측 철책을 통과한다. 북한 군인들이 보인다. 군인들이다. 무표정한 얼굴의 북한 군인들, TV이나 책이 아니라 실제로 처음 보는 북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짠해 온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흥분일까, 아니면 감동일까, 아 잘 모르겠다. 그냥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분단의 장벽을 유유히 통과해 지금 북녘의 땅에 내가 있는 것이다. 들어오라 허락받은 길이지만 마치 금단의 땅에 몰래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임시로 지은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해 짐 검사를 받으면서 정말 북한 땅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강하게 밀려온다. 혹여나 금지된 촬영을 할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주히 오고 가는 북한 군인의 모습을 보며 좀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나마 세관원 중 한 분의 부드러운 음성이 불안한 마음에 조금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북측 출입사무소를 나와 금강산 관광구역인 온정리로 향한다. 불과 30~40여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다. 온정리로 향하는 길에 드문드문 북한 주민들의 마을이 보이고 간간히 주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차림새가 조금 남루한 것을 빼면 우리와 다를 바 하나 없는, 우리네 이웃과 같은 모습이다. 가능하다면 버스에서 내려 손이라도 잡아 보고픈 심정이다. 하지만 아직은 허락되지 않는 바람일 뿐이니 아쉽다.

▲ 장전항에 있는 수상호텔의 모습
북녘 땅에서의 첫날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긴장과 설렘의 시간

온정리 금강산 관광구역은 북측 지역이라는 것을 빼고는 우리네 여느 관광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느낌이다. 많은 남측 관광객들과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이제껏 무겁게 온몸을 짓누르고 있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는 듯하다.

우리 일행이 묵게 될 금강산 호텔에 도착하자 북측 접대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조금은 긴장한 내 마음과는 달리 오히려 그네들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와 조금은 당황스럽기조차 하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오래된 지라 남측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객실 테라스 저 너머 금강산 자락이 한 눈에 펼쳐진다. 비에 젖어 차분히 가라앉은 금강산의 모습은, 비록 이름난 절경도 아니건만 그 자체로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하다.

객실에 짐을 풀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오느라 지친 여독을 풀기 위해 온천을 찾았다. 저 멀리 펼쳐져 있는 금강산 자락들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탕에서의 온천욕은 만족도 200%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몸과 마음 모두가 개운해 지는 듯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나니 시장함이 몰려온다. 첫날 저녁은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금강원’이라는 식당을 찾아 불고기를 먹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고기가 아니라 삼겹살 요리다. 북측에서는 불에 구워 먹는다는 의미로 삼겹살을 불고기라 부른다.

불고기의 맛도 나름 괜찮았지만 처음 마셔보는 대동강 맥주는 기대 이상의 맛을 선사했다. 하이네켄을 연상케 하는 싸한 맛은 미각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금강산 방문 중에 경험한 즐거운 기억 중의 하나다.

덧붙여 영화배우 이영애씨와 이름이 같은-미모도 출중했던-‘금강원’ 여성 접대원의 맛깔스런 노래도 대동강 맥주의 색다른 맛과 함께 오랜 잔상을 남긴다.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금강산에서의 첫날밤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정각 봉사소-우리의 주점과 같은 곳인데 ‘봉사소’라 부른다-에서 감흥을 이어간다. 북한의 특산품인 들쭉술 몇 병이 바닥을 보였지만 누구도 쉽게 취하지 않는 듯하다. 그 시간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들은 분명 이전 남쪽에서 보았던 그것과 다름없을 텐데 왠지 애잔해 보였던 것은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금강산, 북녘의 땅에서의 첫날밤은 설레고, 흥분되고, 두려운 마음들이 뒤섞인 채 지나가고 있었다.

 

▲ 옥류동 계곡의 모습. 금강산의 계곡 가운데서도 첫째로 꼽히는 명소이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 버린다 해 옥류동이라고 한다
변화무쌍한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에 마음을 빼앗기다

엊저녁 과음 탓에 머리가 어지럽다.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잔뜩 찌푸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굵은 빗줄기를 쏟아낼 듯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런 빗속에서 등반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이 다행이도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날씨가 무척이나 변덕스럽다.

아침 식사를 위해 들린 호텔 식당의 여성 접대원이 퀭한 눈빛의 내 모습에 ‘어제 술을 많이 드셨나 봅니다’라고 웃으며 안부를 묻는다. 그 모습이 정겹다.

금강산 방문 이틀째, 오늘은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던 금강산의 절경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구룡연과 상팔담 등반이 오늘의 코스다.

▲ 구룡폭포의 절경.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 이름 지어진 높이 74m, 너비 4m의 구룡폭포는 금강산 관광의 대표적 명물로써,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폭포로 일컬어지고 있다
북측 음식점인 목란관에서 시작하는 구룡연 등반코스는 절경으로 널리 알려진 구룡폭포와 구룡연, 상팔담, 비봉폭포를 비롯해 연주담, 옥류담 등 유명한 연못들이 집중돼 있는 곳으로 계곡의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이다. 계곡이 많은 만큼 아름다운 다리들도 많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과 담소들의 풍경이 옥구슬을 모아놓은 듯 맑고 청량하다.

목란관을 출발해 수림대, 양지대, 삼록수,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구룡폭포 상팔담으로 이어진 등반코스는 약 8.6km로, 왕복 약 3~4시간이 소요된다.

삼록수 약수터는 약수터 위에 노루소와 산산밭이 있고 약수터로 산삼과 녹용 섞인 물이 흘러내린다고 해 삼록수라 한다. 오르면서 한 모금 마시면 10년이 젊어지고 내려오면서 한 모금 마시면 10년이 더 젊어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삼록수를 지나 만나는 금강문은 금강산의 5대 돌문 중 하나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문으로 문을 통과하면 옥류동과 구룡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금강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옥류동은 예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물이 옥같은 구슬로 흘러내리는 골이라 해 불려지는 이름이다. 봉우리는 하늘에 피여난 꽃송이와 같다고 해 천화대라고 하고 위에 있는 산은 수려하면서도 얌전하고 예쁘장하다고 해 옥녀봉이라 한다. 옥류담담의 면적은 600㎡이고 물의 깊이는 5~6m나 된다.

옥류동은 금강산의 계곡 가운데서도 첫째로 꼽히는 명소로서, 신라의 최치원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과 조선의 정선을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절승을 노래하고 그림을 그려왔다고 해 시와 노래, 그림 등 문학예술작품에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옥류동을 지나 한참 오르면 연주담을 만난다. 옛날에 선녀들이 내려와 놀다가 구슬 2개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어져 만들어졌다는 연주담은 비봉폭포 아래 2개의 담소로 이뤄져 있다.

금강산 4대 폭포 중 하나인 비봉폭포는 세존봉의 높은 중턱에서 층층으로 된 바위벽을 타고 쏟아진다. 층암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마치 활짝 깃을 편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모양과 같다고 해 비봉폭포라 불린다.

빗줄기가 오락가락 뿌리는 궂은 날씨 속에 드디어 구룡연 등반의 종착지인 구룡폭포의 웅장함과 만난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 이름 지어진 높이 74m, 너비 4m의 구룡폭포는 금강산 관광의 대표적 명물로써,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폭포로 일컬어지고 있다.

폭포절벽과 바닥이 거대한 한 덩이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물길이가 13m나 돼 쏟아지는 물소리가 엄청난 세계에서 보기 드문 폭포이다. 흰 비단을 드리운 것 같은 폭포수, 진주알 같은 물방울 등의 자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구룡폭포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친 다리를 쉬었다 내려오는 길에 잠시 길을 벗어나 오르다 보면 상팔담을 만나게 된다. 에메랄드 색의 담소 여덟 개가 층층으로 잇달아 있는 상팔담은 북측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219호로 지정돼 있으며 상팔담의 신비한 경관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팔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낳았을 정도로 천하의 절경이다. 상팔담을 보기 위해서는 구룡대라 하는 전망대까지 올라야 한다.

▲ 구룡폭포를 배경으로 함께 일행들의 모습
구룡폭포에서 만난 어여쁜 여성 안내원의 미소에 반하다

궂은 날씨 탓에 비에 젖고, 땀에 젖어 조금은 힘들게 오른 산행길의 정점에서 만난 구룡폭포의 절경은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 내기에 충분하다. 구룡폭포의 웅장함과 수려함은 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구룡폭포의 절경에 빠져 있노라니 우리 일행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북측 여성 안내원-아쉽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이다. 미소를 머금은 고운 얼굴의 그 안내원은 우리 일행에게 구룡폭포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한다. 살짝살짝 내비치는 미소가 어여쁘다.

구룡폭포의 절경에 반하고 여성 안내원의 수줍은 미소에 다시 한 번 반한다. 구룡폭포의 절경은 여성 안내원의 미소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등반 중간중간 북측 안내원들을 만나게 된다. 명소를 소개하기도 하고, 음료수 등을 판매하기 위해 있는 안내원들은 남측 관광객들을 대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오히려 먼저 ‘어디서 왔냐고’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그네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남과 북 다른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거리감과 북측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유 없는 이질감은 금세 사라진다. 비록 오랜 분단의 세월, 다른 이념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만 한 민족, 한 동포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날의 산행은 금강산의 절경과 함께 분단된 조국의 한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동포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간직될 것이다.

▲ 구룡연 등반코스 중에 만나게 되는 금강문에서. 금강문은 금강산의 5대 돌문 중 하나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문으로 문을 통과하면 옥류동과 구룡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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