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자기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7.10.08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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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인] 한전 연간 단가계약업체, 삼대전기 임경택 소장

“같은 요리라도 그릇을 잘 만나야 모양이 더 나고, 그릇에 어울리도록 담아야 요리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예로부터 ‘빈 그릇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 양도 양이지만 그릇이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덕을 담을 수 있다고 믿어왔고, 나는 한 번도 내 그릇 이상의 꿈을 가져본 적 없다.”

오늘 만난 주인공이 내게 준, 작지만 큰 선물은 그의 그릇이야기다. 오전 약속이 생각나 일찍 사무실을 나서려 했는데 일이 만만치 않다. 몇 군데의 전화와 바쁜 일처리를 끝내놓고 카메라를 들쳐 매고 길을 나섰다.

“혜화동 성대 앞 근처에서 내일 현장 작업이 있어요”라는 어제 한전의 연간 단가계약 공사업체인 삼대전기의 임경택 소장과의 전화통화 한마디를 목적지 삼아 전철을 탔다.

오전 11시경 어중간한 시간이라 전철도 학교 앞도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대학가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때문인지 활기가 있어보였다. 성대 정문 앞을 지나 골목길에 접어들다가 문득 며칠 전 임 소장과의 첫 만남에서 얘기를 나눴던 그릇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들에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집안의 그릇 중 어느 그릇이 가장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따뜻한 밥 한 공기 내어주는 공기사발이든가 아니면 시원한 김칫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던 사기대접, 또는 된장뚝배기, 가을볕에 가뿐히 말린 고추로 담근 고추장독, 아니면 간장종지… 등, 수많은 그릇 중에서 유난히 아끼는 그릇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주리다가 양식을 배급 받게 됐는데 많이 먹을 욕심에 엄청나게 큰 그릇을 가져갔다. 과연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배를 채울 수 있었을까. 욕심 많은 자, 라며 따돌림을 받아 한술도 얻어먹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 자기의 분수가 있다. 그것이 처지이든, 능력이든 자신의 그것에 맞춰 살아야 탈이 없다. 그래서 임 소장은 남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가볍게 보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한 길을 걸어왔다.

처음 만났던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비가 오는 날은 바쁘지 않겠다 싶어 오후 천천히 광장동 사무실로 향했다. 추석을 앞둔 9월 중순인데 무척 더워서 땀이 흐를 정도의 날씨였다.

광장동에서 장안평 가는 길옆에 사무실이 있고 한쪽에 각종 공사장비들이 주인의 손을 잠시 벗어나 비를 맞고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임 소장에게 땀 흘리며 헉헉거리는 모습으로 들이닥쳐 손을 내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한전 연간 단가계약 업체인 삼대전기에서 근무하게 된 게 벌써 12년째가 됐네요. 우리 일의 특성상으로 볼 때 꽤 오래 한 직장에서 일한 셈이죠. 업무의 여건상 이동성이 잦은 게 이 가공배전업무의 특징입니다.”

임 소장은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임 소장이 전기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때는 1978년이다. 그 전 해에 군대를 제대한 후 처음에는 건설공사업체의 전기공사 하도급 업체인 신안전기에서 내선전공으로 전기 일을 시작해 85년도부터 지금의 외선공사 일을 하게 됐다.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가족은 가장 큰 힘”

임 소장의 고향은 전북 정읍군 산외면이다. 고향 종산리 인근에는 운암수력발전소가 있었다. 운암댐은 운암면 운정리에서 정읍군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 골까지 759m의 굴을 뚫어 동진강의 태인천 상류에 유입시켜 태안면 낙양리에 이르러서는 우측으로 김제방면, 좌측에는 정읍방면으로 물길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운암발전소는 1985년 폐쇄됐고 현재는 저수지 안에 수몰됐다.

1965년에 준공된 섬진강댐은 섬진강 상류의 운암강을 막아서 세운 댐으로 그 규모가 길이 342.3m에 높이가 64m이다. 섬진강 물은 본래 남해로 흐른다. 그런데 섬진강댐을 막고 칠보발전소를 통해 서해로 물길을 돌린 것이다.

국내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인 칠보산발전소는 전력자원이 빈약한 호남지방의 수력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주요자원 개발을 위한 동력원을 공급함은 물론, 발전에 사용한 물을 동진강에 방류해 김제평야의 곡창지대를 기름지게 한다.

발전소 주변에 살면서 임 소장의 어린 눈으로 바라본 발전소는 거대한 고래등과 같았다. 또한 그 물줄기로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 가족들의 밥을 해결해 온 것이다.

몇 년 전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올해 86세를 맞고 있는 어머니 사이에 위로 누나 셋이 있고 장남인 임 소장은 일을 따라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부인과 딸 둘을 키우며 타향을 고향 삼아 살고 있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가 된 임 소장의 큰 딸은 벌써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약사가 되기 위해 학사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커다란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기분야에 발을 들여 일찍 업무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 생활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큰 이유다.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가족은 가장 큰 힘이 된다. 항상 중장비가 동원되고 무거운 전주와 전선 등을 다루며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안전을 위해 항상 최대한 노력하지만 허술한 지지대나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모두가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임 소장은 한 번도 긴장을 늦춰본 적이 없다.”

그는 평생을 새벽 5시 반에 일어난다. 부지런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어쩌면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숙명의 부지런함인지 모른다.

전공의 일이 3D업종이라는 얘기는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실제로 그가 일하는 삼대전기 사무실이나 공사현장 어디에도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새로 충원되는 인력이 적기 때문에 신기술의 노하우를 현장에 즉시 적용하기가 쉽지 않고 인력 동원에 어려움이 크다. 이런 점이 임 소장으로서는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다.

송전선로에서 변전소를 거쳐 일반 소비자에게 오기 위해 배전 가공선로를 거치게 되는데 보편적으로 전신주를 세우고 변전소에서 넘어온 배전선로를 연결해 각 가정이나 공장, 건물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전설해 주는 것을 배전 가공공사라 말한다.

최근 도심에는 전주를 세우기 어려운 지역에 지중으로 송전선로를 매설해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고 선로를 끌어다 쓸 수 있게 되면서 전주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금도 골목을 돌아보면 거미줄처럼 전깃줄이 얽혀있다.

임 소장은 자신의 관할구역인 서울 중구권의 골목마다 모든 전주를 샅샅이 알고 있을 정도로 배전 가공선 공사에 있어서는 베테랑이다.

살아있는 고압선을 다루기 때문에 생명과 직결돼 긴장을 늦출 수 없고 그래서 직원들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신입직원들과 기존의 직원들에게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전에는 한전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했는데 최근에는 민간에서 위탁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안전하게 끝낸 공사 볼 때 가장 보람 느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임 소장도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일이 순조롭게 잘 끝나고 그날 해온 일들을 곰씹어 볼 때 아, 오늘도 무사히 내게 주어진 일을 완수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모든 안전의 책임은 본인이 지고 가야하는 게 99%라고 하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어디 한 둘일까.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고 앞에서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한다. 요즘은 정전하지 않고 가능한 시공을 완료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그 현실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때로 마찰을 빗기도 하는데 임 소장은 이제 그런 일도 이력이 붙어 해결하는데도 선수가 다 됐다.

또한 태풍이라도 불게 되면 정전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전원 비상으로 팀별로 24시간 대기상태에 돌입해 대기해야만 한다. 이 일을 하며 임 소장은 이러한 일들이 일상사가 돼서 늘 그에 준비해 관리지침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일을 하며 기억에 남는 것은 지역에 전기가 끊기지 않아 주민들이 편안히 생활하고 때로 주민들이 “참, 노고가 많다”고 격려해 줄때 보람을 느끼며 또한 회사도 꾸준한 사업의 성과를 거둬 가정생활도 안정적일 수 있는 것에 임 소장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임 소장은 어릴 적 큰 꿈을 갖지 않았다. 농부인 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지어 그해 먹고 살면 다행인 시절을 보내면서 누구나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고 한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부모님을 보며 커 가면서 그런 성실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지금은 생활신조가 되어버린 그다.

그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 있다면 타고난 근면성과 건강이다. 그 건강의 비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별 보고 하루를 준비하는 것이 고작. 힘든 일을 매일 해야 하는 일상에서 꾸준한 운동은 벅찬 일인 것이다.

스스로 실천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 참 교육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임 소장은 이제는 다 커버린 딸들에게 지금껏 많은 잔소리는 가급적 삼가고 있다.

“말로 매일 일찍 일어나라고 백 마디 하는 것보다는 어른이 매일 그것을 실천할 때 그 행위가 옳은 일이라면 자녀들은 스스로 따라하게 돼 있습니다. 그것이 산교육이라고 생각해 실천을 위해 저도 매일 노력합니다.”

일이 거친 일이라 주위의 모든 일들이 녹녹치가 않다. 업체와의 거래 관계에서도 자재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엄격해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칠 때면 잘하고 못한 것에 대해 분석하고 개선해야 한다.

업무의 성격상 늘 직원들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업무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빨리 받아들이고 지시한 사항에 대한 부적절한 시공에 대해 관리적 측면에서 지적하는 것을 바른 생각으로 흡수해 재교육을 통해 시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소홀한 현장은 마치 지뢰밭과 같아서 언제든지 터질 위험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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