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 그릴 수 있는 오너 리더십 필요”
“큰 그림 그릴 수 있는 오너 리더십 필요”
  • 박윤석 기자
  • 승인 2014.09.1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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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임택 한국풍력산업협회장]
책임 경영 강화한 Spin-Off(분사) 도입 절실
국제무대서 빠른 판단·결정 승패 좌우
중견 부품기업 성장 벤치마킹 대상

지구촌 에너지의 해답을 신재생에너지에서 찾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풍력은 세계 유력 에너지 단체들의 발표를 통해 그 어떤 신재생에너지원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 소용돌이에 풍력산업 또한 맥을 못 추고 있는 실정이다.
풍력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독일조차 현재 풍력관련 기업들이 도산위기에 처할 만큼 위기에 봉착해있다.
국내 풍력산업도 이 같은 여파를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연이은 해상풍력 프로젝트 포기 발표와 풍력단지 개발 지연, 풍력산업 육성책 부재 등 업계가 희망을 가질만한 소식은 없어 보인다.
풍력산업의 맥박이 점차 흐릿해지는 요즘 업계 내부에서부터 자성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너무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한 나머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는 우를 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내 풍력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임택 한국풍력산업협회장을 찾았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한전에서 분리돼 설립된 남부발전 초대사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 풍력산업 1세대로 불린다.
이임택 회장은 인터뷰 내내 단기적인 수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책임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업구조의 변화를 강조했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오너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서 국내 풍력산업의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 이임택 한국풍력산업협회장
외국 컨소시엄 통한 해외진출 고려할 만
Q. 현재 국내 풍력산업을 평가한다면

A. 세계 풍력시장은 플랜트산업 분야와 비교해 뒤처지지 않을 만큼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국가 가운데 풍력발전 설비를 1GW 이상 설치한 나라는 27개국에 달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600MW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초라한 현실이 아닐 수 없
습니다.
풍력단지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각종 인허가 규제와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닥쳐 실제적인 성과는 손에 꼽힐 정도로 일부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풍력단지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보니 풍력시스템 기업의 실적 또한 연쇄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모든 산업이 그렇듯 선순환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정책과 인프라, 기술력, 업체 간 협업 등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야 수익이 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같은 전반적인 풍력산업 침체에도 불과하고 일부 부품업체들이 세계 풍력시장에서 히든 챔피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Q.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풍력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지

A. 우리나라는 철강과 조선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특히 세계 조선 빅3에 우리나라 기업이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어 해외 시장 개척에 큰 강점을 가지
고 있습니다.
기술력만 갖춘다면 금융 조달 측면에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까지 삼성중공업이 펼친 풍력사업 행보가 이와 비슷합니다.
삼성중공업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인 7MW급 해상풍력발전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시제품을 스코틀랜드에서 실증하고 있습니다.
성공리에 실증을 끝낸 후 인근에 계획된 4GW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죠.
이를 위해 700MW 생산 규모의 공장을 영국 현지에 건설할 방침이었습니다.
기술력과 자금력, 브랜드 인지도를 적극 활용해 해외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친 겁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선택이었죠.
그런데 최근 모든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세운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결국 사업을 접는 수순을 밟는 게 아닌지 우려됩니다.

Q. 국내 풍력산업이 방향을 잃은 것 같은데

A. 현재 우리나라 풍력산업의 분위기는 1980년대 초 한국이 해외 발전플랜트 시장에 진입하면서 겪었던 어려웠던 상황과 유사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 터빈과 보일러를 생산하는 업체가 여럿 생겨나면서 시장에 대한 의욕은 넘쳤지만, 실적이 없어 입찰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 같은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공동입찰 참여였습니다.
일본의 터빈 업체와 영국의 보일러 업체를 묶어 컨소시엄을 구성한 후 국내 기업이 주 계약 당사자로 나서 프로젝트를 수주했죠.
트랙레코드가 없다는 이유로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풍력업계도 이 같은 접근방식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풍력사업 분사시켜야
Q.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풍력이 이제 기업 내부에서 애물단지 사업부로 전락했다.

A. 2000년대 초만 해도 우리 힘으로 풍력시스템을 개발하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실제 국내 한 기업은 중국에 제조설비를 구축하는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풍력산업을 집중 육성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 국가의 성장에 국내 기업들은 상당히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냥을 할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사냥감이 돼버린 셈인 거죠.
현재 중국이나 인도의 풍력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의 임원진을 보면 젊고 활동적입니다.
그만큼 세계무대에서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사정은 전혀 다릅니다.
소위 재벌기업은 2세 경영체제로 들어가면서 공격적인 경영보다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과감한 투자와 사업 확대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일부 중견 부품기업의 경우 세계 시장을 누비며 시장점유율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라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이들 중견기업에 대한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 오너들의 의식변화가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Q. 풍력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에 제안하고 싶은 방안이 있다면

A. 기업이 추구하는 기본 목적은 수익이라는 불변의 법칙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그 투자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권한 또한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분사 개념인 Spin-Off 도입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Spin-Off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 사업을 독립적인 주체로 분할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직이 비대해진 대기업의 경영을 다각화해 새로운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경영에 따른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어 소신껏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거죠.
과거 은행이 신용카드 사업을 분사시켜 좋을 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Spin-Off를 잘 활용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Q. 풍력사업을 가로막던 규제들이 일부 완화됐지만 기업들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A. 올해 발주된 풍력시스템 물량 가운데 120MW 상당을 해외기업이 수주했습니다.
많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풍력단지 개발업체는 대부분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이들 또한 경제논리에 맞게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발전 공기업의 경우 국내 기업의 참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어 수주 경쟁이 덜한 편입니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시장을 목표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안방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보호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외부에서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기 이전에 어떤 상황에서건 대처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합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주어져도 기회인지 모릅니다.

풍력단지 개발, 지역주민이 열쇠
Q. 육상풍력 저변확대를 위한 주민참여형 풍력단지 개발의 추진 배경은

A. 풍력업계 입장에서는 환경보존과 삼림육성이 규제로 받아들여지지만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과거부터 이어왔던 법을 개정함으로써 훼손의 의미로 인식하게 됩니다.
최근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계통연계 한도를 변전소당 최대 75MW로 늘려 풍력사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은 마련됐지만 지역주민의 동의가 남아있습니다.
결국 지역주민의 수용성을 고려한 주민참여형 풍력단지 개발이 합리적인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덴마크,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는 이미 정부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심지어 덴마크에서는 대규모 사업비가 들어가는 해상풍력단지 개발에도 지역주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국회에서 이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Q. 풍력업계 관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동반성장이 국내 산업계의 화두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풍력업계는 아직 동반성장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부와 기업 간 협업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업체 간 협업시스템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풍력시스템을 제작하고 있는 대기업과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상생의 동반성장을 이어간다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늘 옳다는 사고는 기업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듭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풍력산업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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