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인 제도의 악용을 경계해야
지배인 제도의 악용을 경계해야
  • EPJ
  • 승인 2014.08.1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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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상 지배인(manager)은 특정한 상인(영업주)에 종속돼 그의 영업에 관한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상업사용인이다. 따라서 지배인은 실질적으로 영업주의 영업전반에 대한 포괄적 대리권을 갖으며, 명칭에 상관없이 그러한 실질적 권한이 있어야만 지배인이다. 그리고 지배인은 그가 속하는 본점이나 지점에 지배인등기를 통해 공시해야 한다.

지배인제도를 두는 이유는 상인이 혼자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를 도와줄 대리인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기업이 법적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변호사를 선임해 수행하기도 하지만 법률적 지식이 있는 직원을 지배인으로 등기한 다음 그가 소송을 수행하게 한다.

그런데 최근에 비지배인이 마치 지배인인 것처럼 지배인등기를 하고 특정 소송사건에 관한 가처분신청 및 소송서류작성, 법정출석 등을 하다가 적발돼 변호사법위반죄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법원은 영업에 관한 포괄적 대리권을 가지는 지배인으로서의 실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변호사가 아니면서 오직 특정한 법률적 분쟁만을 해결하기 위해 그 대리권 획득의 수단으로 지배인등기를 하는 것은 변호사법위반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 1978.12.26. 78도2131).

다른 사례로 K가 회사의 ‘**지역본부의 소송팀’ 지배인으로 등기하고, 회사의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지역본부 소송팀’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회사의 채권회수를 위한 소송업무만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부서에 불과하고, 독립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상법상의 영업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K는 특정 영업소의 지배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준법정신이 희박한 일부 기업이 상법상 지배인의 소송대리권을 악용해 지배인이 아닌 자를 지배인으로 등기해 소송업무를 맡기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또 채권추심회사나 카드회사 등이 지배인이 아닌 일반 직원을 지배인으로 등기한 후 이들에게 소송을 전담시키는 행위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이비 지배인’은 불법적인 브로커에 불과하다. 지배인에게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는 이유는 상인인 영업주가 직접 소송하는 불편을 덜어주려는 것이 목적이지, 사이비 지배인에게 소송만을 전담하는 행위를 허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사이비 지배인의 소송행위는 변호사 아닌 자가 경제적 대가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행위를 금지하는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에 위반되며 변호사대리의 원칙도 침해하는 것이다. 법원도 사이비 지배인에 의한 소제기는 사법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행위로서 본안심리를 하지 않고 곧바로 소를 각하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불법 브로커들의 위법행위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수십억대의 금융 대출을 알선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대출브로커가 있는가 하면, 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의 법정관리인에게 접근해 회생계획안에 대한 동의를 얻어 주겠다며 비자금을 가로챈 브로커도 있다.

불법 브로커가 법정을 공공연히 드나들게 되면 재판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고 변호사에 의한 정당한 변론을 받을 국민의 권리도 침해될 것이다. 나아가 적법절차에 의한 분쟁 해결이라는 원칙이 증인매수, 재판관에 대한 불법로비 형태로 변질되는 등 사법정의 실현은 멀어질 것이다.

기업도 사이비 지배인을 통한 분쟁해결을 선호하게 된다면 법조브로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가 된다.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조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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