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이해하는 꽃’들이 펼쳐내는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이정표
‘말을 이해하는 꽃’들이 펼쳐내는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이정표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9.0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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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 있는 공간] 뮤지컬 ‘해어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생’을 단순히 요즈음의 호스티스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영화나 드라마의 황진이나 장녹수 등을 비롯해 기생의 위치를 재정립 하는 움직임이 빈번하다.

뮤지컬 <해어화>도 몇몇 부분에서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해어화’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노래와 춤에 능하고 교양이 뛰어났던 일패 기생(일패 기생은 문학, 춤, 노래, 악기 등에 능했던 예인으로 몸을 함부로 내맡기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한다)을 뜻한다.

신분타파의 욕망이 피어나기 시작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최고 권력가의 아들이지만 일찍이 계급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평등 사회를 꿈꾸었던 혁명가 산하.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조선 최고의 일패(一牌) 기생이 되려는 소연. 그리고 이들의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뮤지컬 <해어화>는 전통적인 한국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세대와 장소를 초월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신·구의 열정이 만난 ‘별들의 잔치’ 뮤지컬 <해어화>
연기력과 가창력을 겸비한 실력파 배우들이 <해어화>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다양한 연령과 캐릭터를 지닌 배우들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온 베테랑급 선배 배우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와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실력 있는 젊은 배우들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한국 뮤지컬 역사의 산 증인으로 변함없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사로잡는 뮤지컬계의 대모 윤복희가 사랑의 요정 빵코 역으로 분하는 한편, 어떤 배역이든 갖가지 색깔로 표현해내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김수용과 제대 후 첫 작품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정과 애정을 쏟고 있는 홍경인이 남자 주인공 산하 역을, 빼어난 외모만큼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가수로도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정선아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단번에 주인공을 거머쥔 무서운 신예 이민아가 여자 주인공 소연 역에 각각 더블 캐스팅 됐다.

또한 폭발적인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이정화는 기생학교 예기원의 원장 효재 역으로, 그간 유머러스한 역할을 많이 했던 주원성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으로 분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한편 창작 뮤지컬의 히어로라 일컬어지는 조승룡은 민중 봉기의 핵심인물인 고천 역으로, 기생이지만 곧은 신념을 가진 사비향 역에는 에너지 넘치는 보이스의 김영주가 극을 빛내고 있다.

이 밖에도 여리 역의 이상현, 은향 역의 홍승아와 박홍주, 인권 역의 김준태 등 차세대 뮤지컬을 빛낼 스타들도 대거 포진돼 있어 <해어화>의 캐스팅은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라 할 수 있다.

 

노래와 춤으로 엮어낸 동·서양의 절묘한 호흡, 그리고 환상적 무대장치
<해어화>는 탄탄한 스토리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는 아마도 음악과 춤일 것이다. 조관우의 <늪><모래성>, 변진섭 <너에게로 또 다시><숙녀에게> 등 수 많은 히트곡을 작곡했던 하광훈이 선사하는 뮤직 넘버는 약 20여 곡. 뮤지컬로 돌아온 그가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음악들은 감미로운 팝 발라드를 기본으로 클래식 하면서도 모던한 선율을 담고 있다.

여러 장르로 변주된 주제곡 ‘타버린 나무’를 비롯해 재즈와 블루스, 왈츠 등 자양한 장르를 두루 접목시킨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통일성 있게 극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드럼 등으로 구성된 서양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대금, 북, 가야금 등 우리 전통의 소리와 어우러져 풍성하고 다채로운 선율을 만들어 낸다.

<해어화>의 춤은 장엄하면서도 영롱하다. 우리네의 고전무용과 서양의 발레를 합쳐 놓은 듯한 기생들의 우아한 몸짓들, 그리고 힘이 느껴지는 민중들의 울분의 춤은 여타의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수준을 자랑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대규모의 군무라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맹점을 딛고 오랜 기간 숙성을 거친 장맛처럼 눈에 착착 감기는 춤사위는 과연 별 다섯 개를 줄 만 하다.

한편, 신비로운 무대장치도 이 작품을 평가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해어화>의 무대는 ‘어떻게 하나의 제약된 공간에 저렇게 많은 무대장치들이 아름다운 규모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의 회전으로 환상적 느낌을 주는 원형의 중앙무대와 몽환적 느낌의 레이저 쇼를 비롯해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무대장치는 극의 표현력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며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조선시대 일패 기생이 되기 위한 여인들의 불꽃같은 삶과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뮤지컬 <해어화>. 이 작품은 100%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임에 분명하다.

 

▲ 해어화의 배우들(왼쪽부터 여리-이상현, 은향-박홍주, 소연-이민아, 산하-홍경인, 소연-정선아, 산하-김수용, 은향-홍승아, 인권-김준태)

공 연 명: 뮤지컬 <해어화>
공연일자: 2007년 8월 10일(금) ~ OPEN RUN
프 리 뷰: 2007년 8월 3일(금) ~ 8월 9일(목)
공연시간: 평일 8시/ 토·일·공휴일 3시, 7시 /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장소: 양재동 한전아트센터
티켓가격: VIP석 100,000원 / R석 70,000원 / S석 60,000원 / A석 40,000원
         (프리뷰 공연은 40% 할인)
제    작: ㈜ 장강
공연문의: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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