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교훈
키코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교훈
  • EPJ
  • 승인 2013.10.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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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08년까지 상당수 중소수출기업이 키코상품을 가입했는데, 2008년 미국의 리먼브라더스은행이 파산하자, 환율이 900원대에서 1,400원대로 치솟아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됐다. 피해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많은 사건 가운데 대법원 판결이 지난 9월 26일 처음 선고됐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53683(본소), 2011다53690(반소)).

키코(KIKO·Knock In Knock Out)는 환율변동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통화 옵션계약의 일종으로서, 환율이 계약상 지정된 상단보다 높은(Knock In) 상태에서 만기가 되면 은행이 기업의 가입금액을 계약환율로 사는 권리(콜옵션)가 주어진다. 반면 지정된 하단과 상단 사이의 환율로 만기가 되면 기업이 시장환율이나 계약환율로 가입금액을 은행에 파는 권리(풋옵션)를 갖게 되며, 환율이 하단보다 낮은(Knock Out) 상태가 되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이에 피해기업들은 키코계약은 환율이 지정된 구간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기업의 손해가 너무 커 정상적인 환헤지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이러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공정한 계약 내지는 사기에 의한 계약이므로 무효이거나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불공정한 법률행위인지 여부는 법률행위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사후에 외부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일방에게 큰 손실이 발생하고 상대방에게 큰 이익이 발생할 수 있더라도 당연히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헤지거래는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물거래에 따른 가격변동 위험을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줄이기 위한 거래로, 헤지거래를 하려는 당사자가 특정구간에서만 위험회피가 되는 헤지거래도 다른 거래조건들을 함께 고려해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전체 구간에서 위험회피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으로 헤지에 부적합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환율이 상승하면 당해 통화 옵션계약 자체에서는 손실이 생기지만 외환현물에서는 그만큼 환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율상승으로 인해 고객이 손실을 입지 않는다. 다만 기업들이 수출대금을 훨씬 초과하는 범위의 키코계약에 가입을 한 것은 환헤지의 목적을 뛰어 넘은 투기이며, 그로 인한 손해는 기업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 키코상품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키코 가입을 권유한 은행은 계약을 체결할 때 해당 기업의 예상외화유입액, 재산상태, 환헤지 필요성 등의 경영상황을 사전에 파악해 해당 기업에 적합하지 않은 계약의 체결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의무를 위반해 과도한 위험을 초래하는 통화 옵션계약을 적극 권유한 것은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한 불법행위다.

특히 위험성이 매우 큰 장외파생상품가입을 권유할 때에는 타 금융기관보다 더 무거운 고객의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위험한 장외파생상품인 키코계약을 권유한 은행은 그 위험성,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의무를 소홀히 한 점은 인정되므로 은행은 피해기업에게 설명의무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청구액의 약 20~30%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판례가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험한 금융상품을 가입하는 고객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자기책임의 원리에 의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설사 금융지식의 부족으로 상품의 구조를 알지 못했더라도 그 책임은 스스로에게 돌아간다.

둘째, 상품판매자인 금융기관은 금융공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파생상품인 환헤지상품을 판매할 때 그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고객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설명의무를 위반한 키코계약에서 은행이 일시적인 이익은 얻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다수의 우량고객을 잃고 신용까지 잃게 되는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속담이 세삼 가슴에 다가온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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