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이야기(2)
똥차 이야기(2)
  • EPJ
  • 승인 2013.08.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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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콩트마당(60)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앞마당에 주차돼 있는 차를 몰고 동네 단골정비소로 갔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에 미리 차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였다.

내 차는 1990년산 흑장미 색 르망이다. 스틱형이고 그 흔한 파워핸들이나 ABS브레이크 같은 것도 없다. 숫처녀의 몸으로 시집을 왔으니 내게는 조강지처인 셈 이다.

햇수로는 십 수년째지만 출퇴근 때는 늘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말나들이나 명절 때 고향 가는 길에 타다보니 주행거리는 아직 7만6,000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제대로 관리를 안 한 탓인지 이놈의 차가 요즘 들어 심심찮게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지난 설날 고향에 다녀오다 고속도로에서 대전을 막 지날 무렵 갑자기 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보험회사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레커차에 끌려서 신탄진에 있는 어느 정비소에 갔다. 삼발이가 탈이 난 줄 알았으나 미션 오일이 다 말라서 기어가 안 들어간 거였다. 11년 동안 미션 오일을 한 번도 보충을 안 해주었으니…. 결국 3시간을 기다린 끝에 삼발이까지 갈고 나서 다시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지난 5월, 어머니 제사 지내러 내려가다가 고향까지 거의 다 갔을 때, 갑자기 보닛에서 떨꺼덕 떨꺼덕 하는 소리가 났다. 정비소에 가서 알아보니 에어컨 벨트가 끊어졌고, 끊어진 벨트가 축에 감기면서 나는 소리였다.

“이놈의 똥차! 팔든지 폐차를 시키든지 해야지.”

서울에 돌아와서 중고차 시장에 전화를 해봤다. 90년형은 그저 줘도 안 가져간단다. 그렇다고 폐차를 시키자니 아직 8만km도 안됐는데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 10만km만 채우자. 그때 봐서 폐차를 하든지.

그런 전력 때문에 오늘은 정비소 아저씨를 닦달해 더욱 철저히 점검을 했다. 아예 엔진오일도 갈고 혹시나 해서 배터리까지 새 것으로 갈았다. 부동액도 좀 더 채우고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하고 정비소 아저씨로부터 OK 판정을 받고 나서야 출발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경부고속도로에는 차들로 넘쳤다. 그래도 내 똥차는 쌩쌩 잘 나갔다. 밤늦게 경남 밀양에 있는 처가에 도착하니 각지에서 온 처남과 처제들이 모두 애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6남매 모두 애가 둘씩이니 총 24명에다 장인장모까지 합치면 26명이나 됐다.

밤늦도록 놀다가 다음날 아침 늦게야 일어났다. 가재를 잡으러 화악산에 가기로 했다. 모두 5대의 차에 나눠 타고 산으로 향했다. 시골에서는 에어컨을 켜는 것보다 창문을 열고 달려야 제격이다. 산골의 공기는 역시 상쾌했다.

산 중턱쯤 올랐을까. 아, 계기판의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어라, 어제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고, 어제 고속도로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기어를 1단에다 놓고 계속 가속페달을 밟으며 산을 올라갔다. 빨간 불은 계속 켜져 있었지만 괜찮았다.

화악산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해가 저만치 서산 위로 기울어질 무렵 하산을 준비했다. 차에 시동을 켜니 계기판의 배터리에 또 빨간불이 들어왔다. ‘별일 있을라구.’ 생각하며 계속 내려왔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시동이 꺼져버렸다. 내려서 보닛을 열어보니 배터리에 시커먼 구멍이 뚫려있고 그 주위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배터리가 터진 것이다.

레커차를 불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군산 동서가 자신의 차에서 비상용 밧줄을 꺼내왔다. 그 밧줄을 내 차의 앞 범퍼 밑에 있는 고리에 묶고 군산 동서의 더블 캡 포터로 앞에서 끌었다. 나는 핸들만 조작하며 뒤를 따랐다.

시내 정비소로 가니 다짜고짜 배터리와 제너레이터를 교체해야 한단다. 배터리액이 묻은 전기배선과 호스도 모두 교체해야 하고. 또 앞바퀴를 연결해주는 샤프트(축)도 터졌다며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45만원이란다. 휴가 올 때 가져온 돈 모두를 내어도 모자라는 액수였다. 거의 사정하다시피 해서 겨우 35만원으로 합의를 보고 차를 고쳤다.

다음날은 청도 운문사 주위의 계곡으로 갔는데, 출발할 때 또 탈이 나면 어쩌나하고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전 10시쯤 처가를 나와 경산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대전까지는 무사히 왔다. 그런데 대전을 지나 호남선과 만나는 지점(지난번에 미션 오일이 말라 레커차에 끌려갔던 지점)에 오니 또 계기판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번에 또 배터리가 터지면 어떡하나 싶어 겁이 덜컹 났다. 죽암휴게소 2k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나와 2단 기어를 넣고 천천히 죽암휴게소로 향했다. 다행히 정비소가 있었다.

계기판의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고 했더니 또 제너레이터를 새것으로 갈아야한단다. 나는 어저께 배터리가 터져서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제너레이터가 불량품이라며 정품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그 비싼 제너레이터를 또 갈았다.

서울에 도착해 집 근처에 오자 출발할 때 점검을 했던 단골정비소로 갔다. 정비소 아저씨한테 휴가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얘기했다. 3일전에 여기서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았지만 하루 만에 터져서 다시 갈았고, 제너레이터는 이틀 만에 두 번이나 갈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보닛을 열어 찬찬히 살펴보던 정비소 아저씨, “옳지 이거로구나”하면서 나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를 연결해주는 전기선의 암나사가 헐거워서 살짝만 건드려도 수나사가 빠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차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금방 빠지게 돼있었다. 그게 빠져버리면 과열이 돼 배터리가 터진다는 거였다. 아저씨가 헐거워진 연결부분을 펜치로 꽉 눌러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너레이터와 배터리는 처음부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신문’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 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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