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원전 비리 국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
(권두언) 원전 비리 국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
  • EPJ
  • 승인 2013.08.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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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원자력계 뿐 아니라 전력계 종사자 모두에게 잔혹하고 부끄러운 시간이 되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해 국가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자력 마피아 또는 비리집단이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있다. 요즘처럼 내가 전력계에 몸담았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작년 말 시험성적서 위조로 시작된 총체적 원전 비리 사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울진(현 한울) 3·4호기와 영광(현 한빛) 3~6호기에 설치된 34개 품목 587개 부품이 위조된 품질검증서로 납품됐다. 또 영광 5·6호기에 12품목 694개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고리 원전에도 국내 2개 업체가 한국수력원자력에 납품한 1,555개의 위조 부품이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올해 5월에는 아예 국내 시험기관에서 성적서 자체를 조작한 사건까지 터지며 원전 2기가 추가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국내 원전 23기 가운데 10기가 제대로 가동을 못하게 됐다. 최근에는 한수원 전 사장과 부장의 집에서 억대의 현금 뭉치가 발견됨에 따라 이들은 구속 수감되고, 원자력계 최고 상층부까지 비리에 관련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쯤 되니 국민들이 원자력계와 전력계 종사자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이런 오명과 비난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억울하다는 목소리는 접어두라. 그동안 우리 원자력계에 이런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러나 이런 비리 국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비리와 관계없이 원전 건설과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원전을 건설·운영하는 한수원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다. 무력감과 분노, 자괴감이 가득할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의 실수와 방심이 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숙지하고 긴장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

또 하나 원전 비리와 원자력진흥정책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원전 비리 때문에 반핵단체를 중심으로 탈 원전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친 원전 또는 탈 원전은 국가에너지체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고, 이는 일단의 비리에도 불구하고 공정하고 대국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 모두 죄인 된 심정으로 명예회복에 힘쓰자. 우리의 헌신적인 노력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이 주홍글씨가 지워질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발전소 현장을 지켜주기를 당부한다.

월간저널 Electric Power 회장 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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