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 EPJ
  • 승인 2013.06.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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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이 의결돼 오는 11월부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부당하게 탈취하는 행위(기술유용) 외에도 하도급대금의 부당한 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 부당한 반품행위에 대해서도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란 가해자의 악의(malice)나 사기(fraud)가 인정될 경우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을 하도록 함으로써 악의적인 가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유사한 행위의 재발을 막으려는 영미법상의 특수한 배상제도이다.

통상 손해배상은 실제로 입은 손해액(compensatory damages)을 전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해자의 악의적 내지는 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가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손해액을 훨씬 초과한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배심원단이 주로 결정한다. 미국법원은 징벌적 배상을 응징과 억제를 위해 민사재판이 배심원에 의해 부과되는 사적벌금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1994년 뜨거운 맥도날드 커피를 마시다가 화상을 입은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맥도날드는 10여 년간 유사한 화상사건이 700회 이상 발생했는데도 시정하지 않자, 법원은 피해자에게 치료비 16만달러와 270만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명했다. 2005년에는 미국 판사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양복바지를 맡겼다가 분실되자 수천만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청구해 사회적 비난이 거셌던 적도 있다.

그런데 악의적인 행위를 한 경우에 실 손해 배상과 행위금지청구를 명하고 나아가 형사적 재재를 가하면 충분하지 징벌적 배상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 배심원단이 감정에 치우쳐 실 손해의 수십배 내지는 수백배의 배상을 명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연방대법원은 징벌 배상액이 실 손해액의 10배를 넘으면 미국 헌법의 적법절차조항에 위배된다고 했다.

우리 법체계는 실 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하므로 공해나 항공기소음처럼 손해액을 입증하기 곤란하고, 또 손해액이 미미한 경우 개인이 개별적으로 소제기를 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런데 징벌적 배상제도를 이용하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을 길이 열리므로 이 제도가 유용한 측면이 있다.

한편 하도급법에서의 가격인하는 가격분배과정의 갈등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악의적 행위가 아닌 만큼 징벌배상의 대상이 아니고, 가격인하나 반품의 부당성이란 용어가 애매하고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다. 또 하도급 행위만을 징벌 배상의 대상으로 삼으면 기업들이 하도급을 회피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하도급업자에게 불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징벌적 배상제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악의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특정분야에 한정해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생각건대 손해배상의 법체계를 고려해 일반 손해배상법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징벌배상제도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 대상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부당행위로 제한하는 것보다는 자동차 제작결함으로 인한 배상, 악의적 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의 배상, 병원의 고의적인 과다진료비청구처럼 사회적 파장이 크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행위 등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배상액을 일률적으로 3배로 고정할 것이 아니라 행위의 비난가능성, 반복여부 등에 따라 10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중할 수 있도록 해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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