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기
계란으로 바위 치기
  • EPJ
  • 승인 2013.05.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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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마당(57)

내가 영동영업국에서 3년 동안 영업소장을 하면서 진 빚은 2,000만원 정도 됐다. 모두 상부에서 하달한 신계약 목표액을 채우느라 동분서주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빌리거나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은 돈이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았던지 그 동안 진 빚을 일거에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테헤란로에서 벤처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 동기생이 찾아와 대출을 부탁했던 것이다. 대출의 조건으로 큰 보험 한 건만 가입시키면 내게는 목돈이 수당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당으로 빚을 갚을 수가 있다.

나는 영업국장에게 대출 부탁을 했고, 얼마 안 있어 6억원 대출금이 나왔다. 나는 대출 받은 돈으로 그 동기생을 연금보험에 가입시켰고, 1년 치 보험료로 약 3,000만원을 납입하자 수당으로 1,800만원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그런데 수당이 든 봉투를 보는 순간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수당 중 1,500만원은 ‘대출을 받는 데 경비가 많이 들었다’며 영업국장이 챙겨가고 내게는 300만원만 나온 것이다.

주남철 영동영업국장.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업실적으로 우리 회사는 물론 타사에서도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 영업국은 그의 왕국이었고 그는 곧 왕이었다. 그는 창업자인 명예회장이 아들처럼 아끼는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창업자가 허락한 두 가지의 특권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 영업국 내에서 제 멋대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이었고, 또 하나는 그의 전화 한 통이면 만사가 형통되는 대출권이었다. 인사권이 채찍이라면 대출권은 당근이었다. 그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영업국 내에서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영동영업국 내의 어떤 영업소장도 그의 명과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한번은 얼굴이 반반한 한 설계사를 건드렸다가 그녀의 남편이 회사로 찾아오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회사에서 쫓겨났겠지만 그는 1개월 감봉처분만 받았다. 워낙 거물이어서 회사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꼬박 사흘 동안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을 했다. 영업국장과 싸워서 빼앗긴 수당 1,500만원을 받아내느냐, 아니면 비굴하게 참고 견디느냐. 전자를 택했다. 빼앗긴 수당을 받아내기로 했다. 다른 영업소장들도 모두 심정적으로는 동조를 하겠지만 나와 함께 행동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선 본사로 감사실장을 찾아갔다. 내 설명을 들은 감사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보배 같은 존재요. 그냥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은 영업소장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가 이번에 착복해간 수당 1,500만원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내가 물러서지 않자 감사실장은 마지못해 ‘조사를 해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영업본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감사팀이 우리 영업국으로 내려왔다. 영업본부장은 영업소장들을 한 사람씩 불러 개별면담을 했다. 내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본부장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다른 영업소장들은 모두 영업국장에게 피해를 본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 6억원 짜리 계약 건 말이야. 알아보니까 영업국장이 수당을 착복한 게 아니고 영업국 운영비로 썼다던데….”

마치 영업국장의 대변인 같은 말투였다. 약삭빠른 주남철 영업국장이 벌써 본부장과 영업소장들에게 손을 써서 말을 다 맞춰놓았던 것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업소 사원들이 신계약을 해오면 제가 수당을 빼내서 영업소 운영비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그러면서 ‘조직사회에서 그렇게 돌출행동을 하면 본인에게 득 될 것이 없다.’고 했다. 경고인 셈이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있어 주남철 국장은 오히려 차장에서 부장으로 특별 승진했다. 그리고 강남지역의 모든 영업국을 관할하는 강남총국장이 되었다.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완과 탁월한 영업실적 덕분이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다시 본사 인사부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좀 더 강수를 썼다. “주남철 총국장을 한 달 내에 적절한 인사 조치를 하지 않으면 수당착복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고발하겠다. 그리고 처리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우리 영업국에는 새로운 영업국장이 부임해 왔다. 주남철 총국장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임한 다음날 나를 불렀다. 내가 영업국장실에 들어서자 그는 어디를 좀 함께 가자고 했다.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간 곳은 바로 주남철 강남총국장의 방이었다. 주남철 총국장이 봉투 하나를 내게 내밀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미안하네. 1,500만원이네. 모두 돌려주었으니 이제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게.”

나는 봉투를 받아들고 영업소로 돌아왔다. 빼앗겼던 수당을 다시 찾아 기뻤다. 그리고 절대군주 같은 주남철 총국장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영업소로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안 돼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인사 발령장이었다. 울릉영업소장으로 내일까지 부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전화로 하달된 이 달 신계약 목표는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작년에 개소하였으나 영업실적이 미미하여 곧 폐소한다고 알려진 울릉영업소. 그 곳으로 나를 보내고 무리한 목표액을 하달한 것은 알 만한 일이었다. 그건 사표를 내라는 소리였다.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신문’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 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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