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언행과 사법부의 신뢰
법관의 언행과 사법부의 신뢰
  • EPJ
  • 승인 2012.11.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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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정에서 사기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66세 여)가 진술을 애매모호하게 하고 증언을 수차례 번복하자 재판장이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말한 이른바 ‘판사 막말파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해당 판사는 혼자 중얼거린 것이었으나 부적절한 언행으로 증인에게 상처를 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사과를 했고, 여론이 악화되자 대법원장까지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고, 당해 사건은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첫 공판기일에 피고인에게 “인상이 나빠서 더 볼 것도 없다”라는 식의 선입견을 갖는 언행으로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시키는가 하면, 가사법정에서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라” 또는 “귀가 어두우냐” 등 인신 모욕적 발언의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필자도 십여 년 전 형사법정에서 증인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지켜보던 재판장이 변호인의 증인심문에 끼어들어 “거짓말하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만 거짓말해라”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한편 이혼조정 법정에서 “만일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위자료를 대폭 줄이겠다”고 말함으로써 이혼을 당하는 젊은 부인을 울린 적도 있었다.

위 첫 번째 사례에서 증인은 당해사건의 피해자로서 고소인이었을 터인데, 70세에 가까운 노인이 법정에서 수차례 번복하는 증언을 들으면서 재판장으로서 무척 답답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증언의 신뢰성과 신빙성에 의심이 가면 무죄를 선고하면 될 일을 가지고 나이가 들면 죽어야 된다는 표현으로 증인을 자극한 것은 실언이다. 그리고 재판 중 어느 일방이 유리하다는 취지의 발언은 재판의 공정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므로 삼가야 한다.

또한 재판장이 지나치게 고압적인 자세로 당사자나 변호인을 압박하는 것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법관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국민은 헌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를 구현하는 법정에서의 법관의 언행은 개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비속어, 반말, 비난, 선입견을 암시하는 말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판결문을 공개하고 재판과정을 촬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도 처음에는 법정 촬영을 금지했으나 플로리다 주에서 법정 촬영을 처음 허락한 이후 연방법원을 제외한 50개 주의 전부 또는 일부 법원이 카메라촬영을 허용한다고 한다.

영국도 대법원을 제외한 모든 법원에서 이를 허용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는 법원조직법에 의해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판사나 피고인이 법정에 입장하는 모습만 촬영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 기자나 방청인들도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법정에서 사용할 수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 우리 법원의 재판과정을 전부 촬영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재판관련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나 개인정보의 유출 등 부작용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법관의 욕설이나 모욕적 발언 등은 촬영이나 녹음이 허용되어야 막말파문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이 범위 내에서는 허용돼야 할 것이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국민이 재판을 받을 권리의 장이기 때문이지 법관의 프라이버시나 권위의 보호를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변호사회가 모니터링을 통해 ‘훌륭한 법관’을 선발 공개하고, 반대로 나쁜 법관도 공개하고, 아울러 시민단체 등도 법정 및 재판과정을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법관의 부적절한 언행과 편파적인 재판진행으로 소송 당사자들의 신뢰를 잃으면 판결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나아가 사법부의 신뢰까지 잃게 된다.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존경어를 사용하는 재판장의 태도는 설사 당해재판에서 패소를 하더라도 당사자는 그 결과에 승복하고 해당 법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대다수의 법관들은 훌륭하고 예의바르며 공정하다. 하지만 극소수 법관의 법정태도는 감시돼야 하며, 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이 마련돼 일반 국민들이 법정에서 존중받으며 재판받는 법정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상법교수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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