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똥차 이야기
[꽁트] 똥차 이야기
  • EPJ
  • 승인 2012.08.10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에, 우리 아이들과 인천 동서의 아이들을 열차로 미리 보내고 동네 단골 정비소에 가서 14년 된 똥차를 점검한 다음, 저녁 무렵 오토바이 대리점을 하는 인천 동서한테로 갔다.
이번 여름휴가는 고향으로 가되, 전에처럼 경부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영동고속도로로 가서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늦게 출발하는 것이 차가 덜 밀릴 것 같아 밤 11시쯤 출발했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 인천문화회관 옆을 막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떨거덕떨거덕 하는 소리가 났다. 신혼여행 가는 차들이 머플러 꽁무니에 깡통을 달고 갈 때 나는 그런 소리였다. 내 차에서 나는 것 같았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뒤로 가보았다.
머플러의 끝에서 30cm 정도 되는 부분이 녹이 슬고 삭아서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끝 부분이 땅에 긁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손으로 잡아당기니 그 부분이 뚝 떨어졌다. 동서가 말했다.
“형님, 괜찮아요. 그냥 가요. 머플러는 부러져도 운행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아마 좀 시끄러울 거예요. 내일 낮에 강원도 어디에서 고치든지 아니면 용접을 하면 돼요.”
한밤중이라 어디 가서 고칠 데도 없었다. 다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속기를 밟으니 비행기 엔진소리처럼 붕- 하는 굉음이 났다. 그 소리 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동해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렇게 비행기 탄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영동고속도로에는 밤에도 차가 많이 밀렸다. ‘가다서다’를 계속 반복하며 대관령 부근에 오니 어느덧 날이 새고 있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해먹고 다시 출발했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한 굽이를 돌아 나오면 시퍼런 바다가 보이고 간혹 소나무와 어우러진 곳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군데군데 보이는 해수욕장은 수십만 인파가 몰려드는 대도시 인근의 해수욕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사람이 불과 수십 명 정도밖에 없는 해수욕장도 있었다.
한 해수욕장가에 차를 세우고 점심요기를 했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물가에도 가보았다. 동해안은 정말 소문대로 물이 맑았다.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몇 시간을 더 내려오니 어느덧 울진, 경상북도였다. 해안선을 따라 계속 내려왔다. 비행기 소리를 내면서…. 포항을 지나 경주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부산 쪽으로 향했다. 언양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24번 국도를 탔다.
벌써 해가 서산에 기울어져 있었다. 언양읍에서 차를 세우고 언젠가 TV에서 본 불고기를 먹기로 했다.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올려 숯불에 구워 먹는 언양불고기는 역시 소문대로 특이하고 맛도 있었다.
다시 차를 몰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오니 울산과 밀양의 경계지점에 터널이 있었다. 터널을 통과하면 밀양, 고향땅이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얼음골 표지판이 보였다.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가보았던 기억이 났다. 요즘엔 언론에 많이 소개가 되어 여름만 되면 들끓는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조금 더 내려오다 처가 쪽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편도 1차선의 좁은 지방도인지라 차들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 같았다. 저만치 앞에 버스 한 대가 서있었다. 길옆에 학교건물이 보이는 걸 보면 버스정류장 같았다.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기도 그렇고 해서 버스 바로 뒤에 차를 세웠다.
어,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후진을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빵빵- 하고 경적을 울렸지만 순식간에 꽝- 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가보았다. 앞 보닛이 휘어져 오르고 전조등과 방향표시등이 박살나 있었다. 시퍼런 물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행히 라디에이터는 터지지 않은 것 같았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버스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왔다.
‘아니, 빵빵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왜 후진을 했어요?’라면서 내가 다그치자, 그 기사가 말했다.
“뒤에 승용차가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백미러로 보니까 여학생 하나가 비를 맞으며 뛰어오고 있기에 그 학생을 태우려고 후진을 했어요. 어떡하죠? 일단 시내에 있는 정비소로 가시죠. 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버스를 따라 시내에 있는 정비소로 갔다. 운전기사도 길옆에 버스를 세우고 따라 들어왔다. 내 차를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대우차 직원이 보닛, 전조등, 방향지시등과 앞 범퍼를 갈아야 한다며 75만원 든단다. 직원이 물었다.
“보험처리 할거죠?”
그러자 버스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험처리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다 보고를 하면 해고된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돈을 내겠다며 고치라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그 기사의 처지가 딱해 보였다. 나는 대우차 직원에게 말했다.
“이 차 보닛과 범퍼는 새 걸로 교체하지 말고 그냥 펴서 칠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얼마 들어요?”
옆에 있던 동서가 가만히 있으라고 내 옆구리를 찔렀다. 대우차 직원이 말했다.
“그러면 한 30만 원 정도 듭니다.”
나는 그렇게 고쳐달라고 말하고, 다시 버스기사에게 ‘기사 아저씨, 걱정 말고 손님들 다 모셔다 드리고 나서 30만원만 가지고 오세요.’ 하고 말했다.
그 기사가 ‘고맙다.’며 몇 번이나 꾸벅 절하고는 다시 버스로 갔다. 기사가 가자마자 정비소 직원이 ‘아저씨, 왜 그렇게 하세요? 가만히 있으면 새 차 만들어드릴 텐데….’ 하며 딱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못마땅해서 냉큼 쏘아붙였다.
“이 똥차 팔아봤자 몇 십만 원도 못 받는데 75만원 들여서 고친다고 새 차 되겠어요? 그리고 저런 사람 울려서 팔자 고칠 일도 없고…. 참, 고치는 김에 뒤 머플러도 고쳐 주세요. 그 돈은 내가 낼 테니.”
옆에 서있던 아내와 처제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EPJ
EPJ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