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구자윤 대한전기학회 회장에게 듣는다
“대한전기학회 체질 개선 위해 기초체력 만드는 것이 내 역할”
[커버] 구자윤 대한전기학회 회장에게 듣는다
“대한전기학회 체질 개선 위해 기초체력 만드는 것이 내 역할”
  • 양현석 기자
  • 승인 2012.07.09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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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학회 사회적 책임과 참여성 강화해야
1년 만에 개혁 못해… 터닝 포인트 만들 것
학술대회, 친목 넘어 프로페셔널한 모임 돼야

 

“전기학회는 병에 걸려있다. 그것도 크고 오래된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학회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원래 학회란 이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다. 나는 우리가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내 역할은 치료의 첫 단계인 체질 개선을 위한 기초체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들으면 대한전기학회 안티세력의 발언 같기도 할 정도로 격정적이고 과격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재 전기학회의 수장인 구자윤 회장(한양대학교 전자시스템 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전기학회의 하계학술대회를 앞두고 서울 역삼동 대한전기학회 사무국에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만난 구자윤 회장은 전기학회와 전력계 개혁 방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결국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넘겨, 그와의 인터뷰는 한양대학교 연구실을 찾아가는 것으로 2차에 걸쳐 이뤄졌다.

전기학계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경력과 업적을 쌓았음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고, 개혁을 외치는 구자윤 대한전기학회 회장과의 대담 내용을 최대한 가감 없이 옮겨본다.

 

기술과 트렌드 변화에 맞는 학회의 대응 필요

○ 대한전기학회장 취임시 학회의 개혁방안을 발표하신 바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는 대한전기학회의 역할과 개혁방향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아울러 학회장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 대한전기학회는 지난 60년간 꾸준히 규모의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주위 여건과 여력 부족으로 내적 역량을 구체화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전력시장 관련 기술과 학문 트렌드는 급격히 다변화되고 또한 타 분야와 융합된 차세대 기술의 탄생을 요구하고 있으며, 스마트그리드 기술 기반 신규 시장 형성 속도가 점점 증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자 선진 학술기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학술 운영조직 재편을 시도해 신규 학문 분야를 담고 타 분야와의 융합이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기학회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개인회원의 증가는 정체됐으며, 특별회원사 가입에 관련 중소기업의 참여는 매우 미흡하고, 산하 부문회들의 참여 회원수 격차는 심화됐을 뿐 아니라 관련 신규분야 신생학회들이 지난 20년간 줄이어 창립되고 있습니다.

또 기업의 전기학회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습니다. 학회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기업들은 학회가 전통 학문 및 최종산출물 위주의 부문회를 통한 활동을 중심으로 해 기초과학과 시스템 및 엔지니어링 분야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사 학술단체와의 통폐합 필요성을 제기하고, 새로운 융합 학문 분야를 품을 수 있는 환경조성이 미흡해 유사학회의 태동이 계속되고 결과적으로 전기학회의 위상이 하락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학술활동 조직을 개편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전기공학 기반 신규 연구분야 또는 주목 받는 융합분야가 자연스럽게 학회에서 태동되고 발전할 수 있는 부문회의 상호유연성 확보 및 기존의 벽 제거가 필수적입니다.

연구분야가 최근 출현해 걸음마를 떼는 단계인지, 이제 기초 연구를 마무리하고 응용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인지, 혹은 산업화가 시작되고 제품화가 돼 기술적으로 성숙한 단계인지, 성숙한 기술분야가 고도화되는 단계인지 등 기술적 성숙도에 따라 부문회를 구성해 여러 기술 분야별로 학문적 융합 및 교류를 촉진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아울러 기존 국내 전기학회 관련 타 학회와의 교류 활성화 및 젊은 전기공학자의 학회 가입 및 활동을 독려하고 그들을 어우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산업체, 전기 관련 연구기관들과 공생 발전을 모색하는 전기학회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기학회장은 전기학회가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하며, 아울러 아시아 중심권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국제사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과 추진력을 갖춰 학회의 선진화와 업그레이드를 구체화 하고자 합니다. 또 가능한 많은 분들의 의견을 취합해 우리에게 적합한 변화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소통의 장을 만들었으니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 특히 학회의 위상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 전기학회 인지도와 위상을 어떻게 상승시킬까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현재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사실 사회에서는 전기분야 자체의 인지도가 없다시피 하죠. 이는 전기계 오피니언 리더와 전기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왜곡된 전기요금체제와 비정상적인 전기에너지 소비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기분야의 인지도와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면 이런 전기요금제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의 전기에너지 소비구조와 요금체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 채무는 후세에게 주어집니다. 결국 후손들의 돈으로 이 왜곡된 구조로 인한 추가비용을 메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전기학회는 지금까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못해왔고, 스스로 도외시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를 읽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감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전기학회의 병이자 암입니다. 그리고 우리 학회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메스를 들려고 하니 반발이 심할 수밖에요. 특히 기득권 계층은 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겠지만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지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학계의 젊은 피는 수혈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젊은 학자들이 많이 학회를 떠나가고 있는데,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줘야 합니다.

따라서 전기학회의 체질개선이 시급합니다. 마라톤을 하려면 그에 맞는 체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체력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부문회, 미래시장에 따라 신속 재구성

○ 학회의 기초 조직인 부문회의 고착화와 융합의 어려움을 타개할 대책을 말씀해 주신다면.

-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부문회는 학문을 위한 모임보다는 스폰서 기업을 중심으로 한 모임으로 변질됐다고 봅니다. 이를 타파해 미래시장 및 기술·트렌드에 따라 신속히 재구성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직까지는 구체적 안을 말씀드릴 단계가 아닌 것 같아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등의 성장으로 전기·전력계가 호황을 누리면서 대학교 및 산업계에서도 전기공학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기·전력계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스마트그리드와 신재생에너지 등 최근 각광받았던 분야들의 사업화 동력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즉 수익창출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인데요. 그 이유는 이들을 강하게 추진했던 유럽의 경제 위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마트그리드와 신재생에너지의 최대 시장은 유럽인데 최대 소비자가 돈이 없어져 구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거죠. 이들이 트렌드인 것은 맞지만 산업화까지 갈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HVDC를 주목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HVDC는 세계적으로 70조원 시장으로 예측되는 데요. 이를 사업화하려면 과거 765kV 초고압 송전사업 때처럼 관·산·학·연이 함께 합심해 추진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술경쟁력을 갖춘 전문 중소기업이 양성돼야 어떤 사업이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위주의 사업은 급격한 시장변화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 학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세계화를 주창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 무엇보다 학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나올 수 있어요. 이를 위해 미래가치창출위원회를 구성해 준비 중입니다.

사실 제가 주창하는 것들이 1년 만에 할 수 있는 개혁들은 아닙니다. 터닝 포인트를 만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으며, 인식을 공유한 후 ‘전기학회 100년’을 위한 구조개편을 할 것입니다.

 

○ ‘2012 하계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 학술대회를 선진화시킨다는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과거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했던 프로모션을 위한 놀이, 친목도모 위주의 대회를 프로페셔널하게 업그레이드 하겠습니다.

 

○ 전력계 최고 정책 및 규제기관인 전기위원장과 학계의 수장인 전기학회장을 동시에 맡고 계신데, 어려움은 없는지.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요. (구 회장은 이 대목에서 꽤 오래 망설였다) 우선 두 개의 직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어요. 하지만 전기위원회라는 행정조직에 있다 보니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더군요. 그것은 공무원이나 전기쪽 전문가들보다 먼저 국회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공공부문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주시고, 특히 교육과 경제 분야를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갈 때 세월과 국가 에너지만 소모되고 국가 미래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개혁 필요성 느끼는 사람들 늘어나야

○ 100주년을 대비하는 학회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계속 이 말을 반복하게 되네요. ‘우리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직 적다’는 것이에요. 개혁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친목도모는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한 친목이 돼야 하지 않겠어요? 친목이 강조되다 보면 그것은 친목을 넘어 ‘아성’을 쌓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패러다임에서 학회가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학자들이 실망하고 나가버릴 것입니다.

 

○ 학회 회원과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 전기인들이 이 바닥에 대해 실망한 분들이 많아요. 특히 젊은 피, 젊은 학자들이 외면을 하고 있어요. 그것에 대해 대처하고 극복해야 우리가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기학회 직원들이야 너무 열심히 하고 있죠. 적은 인원에 과로하고 있다 싶을 정도로 직원들에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학회의 역할이 커지면 직원을 적정수준으로 확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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