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이름의 잔인한 기억, 그리고 망각 <이터널 선샤인>
추억이란 이름의 잔인한 기억, 그리고 망각 <이터널 선샤인>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7.30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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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이터널 선샤인

착하다 못해 지루하고 소심한 남자 조엘, 그리고 자유분방하며 충동적인 클레멘타인. 둘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자연스레 서로에게 빠져든다. 많은 부분이 상이할 정도로 다른 둘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가진 모습을 이해 할 줄 아는 현명한 연인이다. 하지만 사귄지 2년이 지나 처음의 두근거림도 사라지고 조금씩 서로에게 지쳐가기 시작하는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연인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사랑했던’ 기억, 골라서 지워 드립니다

이별에 다쳤지만 클레멘타인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에 다시금 그녀를 찾은 조엘.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다. 알고 보니 클레멘타인은 선택된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병원을 찾아 조엘의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린 것. 이에 격분한 조엘은 그 의사를 찾아 자신의 기억도 모두 지워 달라고 요청하고 닥터 하워드는 이를 승낙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기억을 역순으로 지워나가는 조엘의 무의식을 따라 진행된다.

그녀와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 그녀와 함께 찾았던 겨울의 호수, 그리고 바닷가.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만났던 기차 속 그녀의 웃음. 그 아름답던 기억 속에서 조엘은 그는 문득, 그녀를 지우기 위해서는 둘이서 나누었던 행복했던 시간들도 함께 지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를 진정한 조엘로 있게 했던 그녀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없었던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클레멘타인을 느끼며 조엘은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라고.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그녀와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조엘. 도피를 보여준다. 그는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유년시절의 기억 속으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던 저 구석진 부끄러운 기억 속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찰리 카우프만의 섬세한 각본과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준 높은 연출은 두 사람의 대화와 각자의 독백 속에서 잘 정제된 다이아몬드처럼 조용한 빛으로 영화를 빛내준다.

 

‘사랑했던’ 기억, 지워버릴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추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들 중 하나이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던 기억, 지난여름 피서지에서 만난 그녀와의 로맨스, 첫사랑과의 첫 데이트 때의 설렘, 대학 입학 후 처음가본 엠티, 그리고 재작년 처음 혼자 떠났던 중국여행, 내 차를 처음 샀을 때의 희열.

하지만 추억이란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집안 문제 때문에 처음 담배를 피우게 됐던 기억, 초등학교 시절 키우던 개가 죽어 밤새도록 펑펑 울었던 기억, 그리고 목숨 바쳐 사랑했던 연인과 함께 했던 추억까지……. 이처럼 추억이란 놈은 가끔 자신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새장 속에 가둬 놓고 기억을 잠식해 우울을 부르기도 하며, 독한 소주 한잔으로는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는 상처를 도지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 누구나 하나쯤은 추억이란 가면을 쓴 잔인한 기억을 품은 채 살기 마련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누구나 지난 기억들로 힘에 겨울 때, 그 기억을 지워버렸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오랜 연인과의 이별은 더더욱 그렇다. 상대와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 수많은 대화들이 갑자기 텅 빈 공허로 다가올 때의 슬픔과 허무.

이 영화는 그러한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욕망이 실제화 됐을 때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스스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사랑했던 기억은 그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함께 많은 것을 공유했던 한 존재의 소멸이란, 동시에 나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망각이 축복인 것은 잊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는 그 상처를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극중 매리(키어스틴 던스트 분)의 대사에는 망각에 대한 니체의 격언이 등장한다.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하지만 감히 니체라는 현자의 말에 반기를 들자면 망각이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모두 잊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그 상처를 껴안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아픈 기억들이 언젠가는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가슴 한켠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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