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 EPJ
  • 승인 2012.03.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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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를 나오자마자 내가 맨 먼저 찾아 간 곳은 부산이었고, 그것은 부산에 사는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은 채정이, 또 한 사람은 부산에 가면 늘 찾아가 숙식(宿食)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 명종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휴가를 나오면 찾아가겠다고 편지를 했었기 때문에.

한 마을에 살던 채정이는 지난번 휴가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후부터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귀대하려고 고향마을 버스정류소를 향해 걸어 나오는데 저 앞 정류소에 연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키 큰 아가씨가 서있었다. 누구지? 우리 마을에는 저만한 아가씨가 없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초등학교 후배 채정이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어느새 숙녀가 되어 있었다. 시골처녀 같지 않게 지적인 얼굴에 늘씬한 몸매, 그리고 마을에 정평이 나있는 착한 심성….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휴가 오기 전에 받은 고향 친구의 편지에서 채정이가 부산 D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쓰여 있었던 것이. 군대 가기 전에 고등학교 교복 입은 모습을 본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라니….

나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채정이 아니냐? 대학생이 되었구나. 부산에 가는 길이니?”
“예, 오빠. 휴가 나왔어요?”
“응, 그래. 휴가가 끝나 이제 귀대하는 길이야. 그래, 대학생활은 재미있니? 무슨 과(科)에 다니지?”

학교는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과를 물어보았다. 가정학과라고 했다. 주말이라 집에 왔다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란다. 우린 함께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왔고,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고향 역에서 헤어졌다.

다시 병영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나도 모르게 채정이가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낮에 참모부에서 근무를 할 때도, 밤에 불침번을 서거나 보초를 설 때도 온통 채정이 생각뿐이었다.

‘오늘 부대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휴가 나와요?’ 하고 묻던 모습과 함께 고향 역에서 상경하는 기차를 타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어릴 때 뒷산에서 함께 그네를 타던 기억, 3년 전 내가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갈 때 대문 앞에서 수줍게 미소 짓던 모습, 채정이에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귀대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나는 기어코 채정이의 학교주소를 알아내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렸다. 편지를 보낸 지 한 달이 지나 거의 포기상태가 될 때쯤 ‘그때의 만남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며, 부담 없는 정을 나누자….’는 답장이 왔다.

날아갈 듯 기뻤다.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편지를 썼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편지가 쌓여가는 만큼 정도 깊어갔다.

나는 첫 휴가만큼이나 이번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휴가를 나오자마자 부산에 있는 채정이 학교를 찾아갔다. 학과 사무실에 도움을 청해서 어렵지 않게 채정이를 만날 수 있었다. 채정이와 남은 수업을 제끼고(?) 함께 해운대로 갔다.

오랜만에 찾은, 봄날의 해운대 백사장은 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린 백사장을 손잡고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햇살을 받은 바다는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파도가 자꾸만 넘실대며 다가와 모래사장을 핥아내고 있었다.

채정이는 발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나는 처음으로 채정이가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소중한 감정을 가슴속에 담았다. 채정이는 묵고 있는 이모 집으로, 나는 명종이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부산에서 묵을 일이 있으면 늘 명종이를 찾아가곤 했다. 내가 밤늦게라도 그의 집에 찾아가면 그는 물론 그의 어머니도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시곤 했다.

명종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급우로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한쪽 다리를 좀 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매사에 구김살이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그의 호탕한 웃음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이상으로 나도 그를 좋아했다. 그는 내가 첫손에 꼽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는 울산에 있는 W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 밤 명종이의 방에서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명종이가 군대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군대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팬티 바람으로 눈 속에서 기합을 받으며 뒹굴던 일, 유격훈련 갔다가 산악구보 중에 대열에서 뒤처지는 바람에 한동안 탈영병으로 처리됐던 일, PX에서 도넛 12개를 사서 한꺼번에 먹고 점호에 늦어서 직싸게(?) 얻어맞던 일….

밤이 깊어도 우리 방에서는 명종이의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오늘 만난 채정이 얘기도 했다. 그는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다며 내일 채정이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채정이를 소개시켜 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오늘 만난 터에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해서 친구를 소개하는 것이 왠지 어색할 것 같았다. 나는 내일은 곤란하다며, 다음 기회에 소개시켜 주마고 했다.

그 순간 명종이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내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그만 자자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고, 다음날 아침 그는 어젯밤과는 달리 쌀쌀한 태도로 나를 배웅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뒤론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귀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지체장애인이기 때문에 내가 채정이를 소개시켜주지 않으려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호탕한 웃음 뒤에 그런 콤플렉스가 숨겨져 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런 뜻이 전혀 없었으며 다음 휴가 때 꼭 소개시켜 주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다. 채정이와는 그 후로도 만남이 지속되었지만 명종이와는 그것으로 영영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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