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뒷북 정전사태 기자회견… 연말 맞이 이벤트 오명
[이슈진단]뒷북 정전사태 기자회견… 연말 맞이 이벤트 오명
  • 박윤석 기자
  • 승인 2012.01.09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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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기학회, 9.15 정전관련 조사결과 발표
기존 정부 입장 답습… 2개월간 뭐 했나

 

주요 매체에서 지난해 10대 뉴스로 꼽을 만큼 국가적 이슈로 주목받은 9.15 정전사태와 관련해 대한전기학회가 사고원인과 대책을 발표했다.
대한전기학회(회장 구자윤)는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9.15 정전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순환정전의 기술적 원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대책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 패널로는 구본우 한전 송변전전략실장, 권석기 전력거래소 계통운영처장, 문영환 전기연구원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등이 참석해 각계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고발생 2달여가 지난 후 가진 이날 행사에서 전기학회는 기존에 정부가 발표한 조사결과 및 대책마련 방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제시, 발표 시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지정토론에서 김문덕 전 회장은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민감한 관계를 이유로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해 알맹이 없는 재방송을 보는 듯했다는 참가자 의견도 있었다.
물론 지식경제부의 자문 요청으로 이번 정전사태의 기술적인 원인을 조사하다보니 빠른 진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모든 자료를 한전, 전력거래소, 6개 발전사에서 일방적으로 제공받아 보고서를 작성하다보니 결과 또한 색다를 게 없을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계 최고 브레인을 자처하는 전기학회의 입장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연말을 맞아 가진 이벤트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지정토론에 참석한 문영환 전기연구원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구본우 한전 송변전전략실장, 김문덕 전 대한전기학회장(사진 오른쪽부터)

비상체계 매뉴얼·수요예측모델 등 개선 필요

김문덕 전 회장은 9.15 정전사태 조사발표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기관 특성상 세밀한 기술 분석이 필요했다고 답변했다. 정부의 정전사태 재발방지 대책과 전기학회의 대책 제안 내용 간에 조율할 부분이 있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대한전기학회는 순환정전의 기술적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26일 조사위원회를 구성,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다. 조사위 보고서에 따라 대한전기학회가 분석한 순환정전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초기 대응 미흡이다. 당시 오전 10시 50분 이미 운영예비력이 400만kW 이하로 떨어진 비상상황이었으나 정부 및 한전 등 관련기관의 유기적인 공동대응 지연으로 비상관리체계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의 개선을 위해 비상관리체계 매뉴얼과 관련 직원의 교육 강화를 제안했다. 또 상시수요관리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둘째, 전력거래소와 발전사 간 예비력 운영 및 비상조치 체계의 개선이다. 당시처럼 부하증가 속도가 예비력 투입 속도보다 빠르면 주파수가 낮아져 계통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20분 내 투입 가능한 예비력을 현재의 250만kW 보다 상향 조절해야하고, 특수 상황에 대비한 적정규모 예비력(400만kW)의 투입 속도 증가에 필요한 기술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셋째, 현행 수요예측시스템(LOFY 2005)의 기능적 한계다. 지금 적용하고 있는 수요예측모델에는 4가지 예측모델이 탑재돼있으나 실제 사용하고 있는 건 ‘종합분석법’ 뿐이다. 기상 및 조업활동 등 수요변화 여건을 충분히 반영한 수요예측모델의 고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국민 참여부족이다.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는 자율절전은 당초 설계(95만kW)의 1/3 수준인 33만kW에 불과하고 이 또한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실효성 확보가 미지수라는 것이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대국민 협조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게 전기학회 측 주장이다.

▲ 김문덕 전 대한전기학회장이 9.15 정전사태에 따른 전기학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큰 줄기에 가지 덧붙인 꼴

전기학회 정전조사위원회는 박준호 전기학회 부회장(부산대 교수)을 위원장으로 이홍재 광운대 교수, 이근준 충북대 교수, 차준민 대진대 교수, 김광호 강원대 교수, 장길수 고려대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날 가진 조사결과 발표만 보면 정부의 순환정전사태 관련 재발방지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큰 줄기에 기술적인 가지를 덧붙인 수준이다. 무엇을 위한 조사였는지 알 수가 없다고 그는 전기학회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한편 토론을 지켜본 전력계 한 관계자는 “전기학회 주요 인사 중 한사람이 이번 정전사태로 국민들이 입었을 피해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다”며 “전력계 모든 종사자들은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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