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
운전면허증
  • EPJ
  • 승인 2011.08.08 17: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윤재성 변호사가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가을 그의 아내가 운전면허 첫 시험에 합격한 때부터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가 하루 만에 면허증을 따오는 걸 보면 운전면허 따는 건 별거 아닌 모양이구나.’

그의 아내의 운전솜씨는 도무지 미덥지가 않았다. 아파트 마당에서 운전연습을 하다가 차가 화단으로 올라가지를 않나, 주차해 놓은 차의 백미러를 스쳐서 수리비를 물어주지 않나…. 윤 변호사가 그 동안 차 때문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운전기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과후의 사적인 만남에는 택시를 이용해야 했고, 명절 때는 용케 표를 구해 열차를 타고 고향에 간 적도 있었지만 번번이 표를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결국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지난 2월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과 가까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3월말에 첫 시험이 있었다. 이론은 책을 사서 혼자 틈틈이 공부를 하기로 했고 실기는 부지런히 학원에 다니면서 익히기로 했다. 필기시험은 자신이 있었으나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학원조교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보았지만 차는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시동은 자꾸만 꺼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조교는 노골적으로 구박을 했다.

“클러치를 살짝 떼야 시동이 안 꺼진다니까요.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소? 운전은 아이큐 70이면 할 수 있는 거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요?”

차마 변호사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 마디 하려다 말고 꾹 참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이큐가 150이 넘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재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지독한 가난 속에 보냈다. 그의 두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집 소작 일을 하고 있었고, 그도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형들처럼 소작 일에 뛰어들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졸업할 무렵, 그의 뛰어난 두뇌와 재능을 발견한 담임선생님이 여러 번 집으로 찾아와 부모를 설득한 끝에 겨우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승승장구였다. M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부산의 명문 P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3년 후 좋은 성적으로 S대 문리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1학년 여름방학 때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혼자 공부해 S대 법대에 재입학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되었다.

그는 아직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윤 판사’ 하면 그의 고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3년 전 심한 위궤양을 앓아 위장 일부를 잘라 내는 대수술을 받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감을 맛보았다.

결국, 그는 건강 때문에 법관직을 포기하고 재작년에 변호사로 새 출발을 했다. 이제 건강도 거의 회복되어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터였다. 운전면허 시험을 불과 닷새 앞두고 코스 연습을 마쳤다. 곧바로 주행연습에 들어갔다. 언덕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돌발 정지 등은 아무리해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드디어 시험 날이 왔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오전 필기시험은 두 문제가 틀려 96점을 받았다. 그날 응시자 150여 명 중 2등이었다. 시험 감독관이 3등까지는 이름을 불러주어 우렁찬 박수까지 받았다.

오후에는 코스시험이었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곳곳에 물이 고여 시험장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차에 올랐다. 굴절코스와 S자 코스는 무난히 통과했으나, 다음 T자 코스로 가다가 차가 물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바람에 불합격되고 말았다.

다시 재시험 접수를 했다. 시험일은 4월말이었다. 그 동안 시간제 티켓을 끊어 부지런히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이번에는 코스시험은 통과했으나 주행시험에서 불합격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집에 오니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딸애까지 핀잔을 주었다.

“또 떨어졌어? 엄마는 한 번 만에 붙었는데….”

다음 6월초 시험 때는 일찍 학원으로 가서 주행연습을 한 시간 하고 시험장에 갔다. 약국에서 청심환을 한 알 사먹었다. 언덕 오르기를 할 때 미끄러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날 학원 조교가 일러준 대로 서지 않고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다른 데서 점수만 따면 된다. 오늘은 과감하게 해야지.

언덕길을 그냥 휙 올라갔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 코너를 돌다가 그만 쾅, 하고 옆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코너를 돌면서 감은 핸들을 다시 풀어야 하는데 풀지를 않았던 것이다. 시험장 직원들과 응시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앞 범퍼 일부가 부서지고 한 쪽 깜박이 등이 깨졌다. 40만 원을 물어 주고서야 처리가 끝났다. 안전시설 미비 등 법적으로 따지면 물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다. 우선 창피했고, 그것 땜에 왔다갔다 시간낭비하기가 싫어서 그곳에서 요구하는 낸 수리비를 모두 준 것이다.

겨울에 시작한 운전,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끝이 나지 않았다. 다음시험은 7월말이었다. 이제 그 학원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많아 창피해서 갈 수가 없었다. 집 주위에 있는 다른 학원에서 주행연습을 했다.

7월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시간초과란다. 이제 응시원서에는 인지(印紙)를 붙일 자리가 없었다. 접수창구에 물어보니 원서 뒷면에다 붙이란다. 다음 시험은 9월이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 오기가 발동하기도 했지만 이젠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마음을 비우자. 올해 안에는 붙겠지….

그날은 연습도 하지 않고 갔지만 전처럼 초조하지는 않았다. 벌써 다섯 번째 이 면허시험장에 온 것이다. 차례가 되자, 담담하게 차에 올랐다. 돌발에는 제대로 섰는지 자신이 없었으나 언덕에서는 미끄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요철 구간을 지나 천천히 출발선으로 들어왔다. 그가 차에서 내릴 때 장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3호차 윤재성, 합격입니다.”
합격통지서를 받아 쥐고 나오는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혀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