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강남고속터미널에서
  • EPJ
  • 승인 2011.07.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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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식힐 겸 서울에 올라갑니다. 언제 올지 모르니 저를 찾지 마시고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집을 나와 어젯밤에 쓴 메모지를 그의 자취방 문틈에 꽂아놓고 곧바로 마산역으로 향했다. 서울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바로 어젯밤이었다. 3년 전에 서울로 시집간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서울역에 도착하거든 형부한테 전화를 해서 퇴근할 때 같이 오라고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열차표는 바로 구할 수 있었다. 열 시 정각에 차가 마산역을 출발했다. 오후 네 시쯤에 서울역에 도착한단다. 열차가 마산 시내를 벗어나니 차창가로 시원한 들판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울긋불긋하게 물들어있었다.

열차가 밀양역에 섰다. 늘 집에 갈 때면 내리던 고향역을 그냥 지나치려니 기분이 묘했다. 등골이 휘어지도록 농사일만 하는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 사람의 집은 서울이다. 사당동이라던가.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일 년쯤 전 마산에서다.

어느 토요일 오후, 고등학교 때부터 늘 단짝처럼 지내던 윤미가 애인을 만나러 창동에 가는데 나더러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친구도 함께 나온다고 했다며.
그것이 발단이었다. 윤미의 애인을 만나고 그 사람의 친구를 소개받고, 네 사람이 오동동에 가서 회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왔는데….

그 다음날 퇴근 무렵, 윤미의 애인인 그 사람이 우리 회사로 전화를 했다. 회사 앞에 와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그 사람은 나랑 사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 사람이 싫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윤미 몰래 데이트를 했다. 윤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만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그런 마음도 차차 사그라졌다.
그러나 좁은 마산 바닥에서 비밀이 오래 갈 리 없었다. 결국 윤미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윤미와 나 사이는 서먹해지고 말았다.

괴로웠다. 나는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회사로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야반도주하듯 자취방도 옮겼다.

어느 날 마산의 K대생들과의 미팅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동에서 술에 잔뜩 취한 그를 만났다. ‘왜 나를 피하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윤미와의 우정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며 잊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내 운명의 여자요. 당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소.”

며칠 후 그는 점심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회사로 찾아왔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 우리 회사까지는 오토바이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괴로우면서도 한편 반가웠다. 다시 만남이 이어졌다.

그때부터 우리 회사에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내가 윤미의 애인을 가로챘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괴로웠다. 결국 나는 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고 3년여 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나는 짐을 싸서 밀양에 있는 집으로 갔다. 집에 눌러앉은 지 일 주일쯤 지나자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내가 다니던 회사를 찾아가 주소를 알아내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마산으로 향했다. 다시 취직을 할 생각이었다. 그의 자취방 바로 옆집에 방을 얻었다. 이제 동창들 사이에 그와 동거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히 죽일 년이 되어 있었다. 어저께, 그는 방을 합치자고 했다. 나는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서울 언니에게 의논을 할 생각이었다.

기차가 어느새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형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6시까지 광화문 교보빌딩 현관으로 오라고 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남대문시장에 갔다. 평일인데도 시장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할 줄은….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퇴근하는 형부와 함께 언니 집으로 갔다. 서울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언니에게 그 사람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언니는 ‘왜 하필 친구애인이냐? 괴로우면 짐 싸서 서울로 와.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 테니.’ 하고 말했다.

5일째 되는 날, 나는 점심을 먹고 언니 집을 나섰다. 짐을 싸서 서울로 올 생각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배웅한다며 언니도 함께 따라나섰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대합실에 들어서는데 저쪽에서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아, 놀랍게도 그 사람이었다. 일요일도 아닌데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를…?

셋이서 커피숍에 들어갔다. 서울 간 지 나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제 막차로 올라왔단다. 나를 찾으러 무작정 서울에 온 것이란다. 어젯밤엔 서울 집에서 자고 오늘 아침에 다시 이곳에 와서 마산행 막차 티켓을 끊어놓고 대합실에 죽치고 있었단다. 그가 말했다.

“그 동안 당신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나도 이제 알겠소. 어저께 회사에다 부모님이 있는 서울로 발령을 내달라고 신청을 했는데 연말 인사이동 때 보내준다고 했소. 우리 결혼해서 서울에서 삽시다. 이곳에는 당신 학교친구들도 없을 거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언니가 말했다.

“같이 내려갈 차표부터 끊으세요.”

“예? 아, 예. 여기에 꼼짝 말고 있으세요. 금방 차표 끊어 올 테니.”

그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저 정도면 됐어. 열정도 있고 박력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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