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야생화 전문 박물관 ‘방림원(方林園)’
세계 야생화 전문 박물관 ‘방림원(方林園)’
  • 양현석 기자
  • 승인 2011.06.09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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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숙 원장의 30년 야생화 열정 집결
건설 중 발굴된 천연동굴 ‘방림굴’ 인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마을에 위치한 ‘방림원’은 보성파워텍 임도수 회장의 부인인 방한숙 원장이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건설과 운영을 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세계 야생화 박물관이다.
방림원은 30년 넘게 야생화 채집 및 분재를 해온 방한숙 원장이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야생화를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설립하게 됐다.
각 테마별 전시관과 함께 야외 관람로, 송이동굴, 폭포, 유리정원, 취미관 등으로 이뤄진 방림원은 우리가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갔던 야생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자연학습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방림원의 마스코트 ‘개구리’ 스토리 감동

방림원을 방문하면 생물의 다양한 변화와  친밀하게 다가오는 야생화의 매력, 천지 가득히 피어있는 꽃들의 색채의 향연과 함께 방림원 마스코트인 개구리의 다양한 조형물과 울음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개구리가 방림원의 마스코트가 된 이유가 흥미롭다. 방한숙 원장이 초창기 방림원 조성 공사를 하는 중에 힘이 들어 울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개구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방 원장은 ‘개구리만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생각에 개구리를 마스코트로 삼았다고 하니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방림원은 2005년 4월21일에 개원했다. 방한숙 원장의 성과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의 성을 따서 방림원이라 이름하고, 방한숙 원장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하나하나 모은 야생화들이 이제는 3,000여종이라는 수종과 함께 5,700여 평의 드넓은 부지에 하나의 전문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들판의 이름 없는 꽃들과 희귀종까지

방림원에 흔하게 피어있는 한 야생화
방림원 곳곳에는 수십년에 걸쳐 국내외 들꽃들을 수집해 온 세월과 정성의 공간으로 항상 마음이 행복해진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미주 대륙에서 수집한 야생화 3,000여종이 자연적인 미와 더불어 소박한 들꽃의 청조함을 느낄 수 있다.

방림원 박물관 내 200여 평의 유리 온실 안에는 그 계절에 피고 지는 200여종의 작품들이 살아 숨쉬고, 제주도 모형과 태극기의 이미지로
방림원의 명물 ‘방림굴
조성된 야외정원 곳곳에는 계절에 따른 테마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웃음과 기쁨을 자아낸다.

또 국내 자생식물 90가지와 귀화식물 10가지를 더한 100가지 식물을 심은 백화동산,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형제 폭포경관, 연못 안의 잉어들의 노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또 다른 실내 전시공간인 양치류 관내에는 세계 각 나라의 양치류(고사리류)들의 새로운 모습이 볼 수 있고,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준다.

공사 중에 발견된 방림굴은 제주도에서도 희귀한 붉은 송이돌로만 이뤄져 있고 굴안에서는 송이돌 특유의 음이온을 받아갈 수 있다.

아기자기한 ‘손 맛’ 매력

방림원을 찾은 아이들.

야생화 박물관은 세계 야생화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교육의 장으로 다양한 접근성과 질 높은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현대 도시화 돼 가는 사회의 문화적 향유를 증대시키며, 무심코 지나쳐 버릴 이름 모를 들꽃이지만 정확한 분류와 소개를 통해 자연의 중요함을 부각시킴은 물론, 박물관의 가치 창출, 인지도 향상에 매우 지대한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사업이다. 앞으로도 방림원은 개인의 영리 목적이 아닌 사회에 환원이 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이 될 것이다.

제주에는 많은 식물원들이 있는데 여타 식물원들이 거대한 규모의 조경 등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다면 방림원의 매력은 ‘아기자기한 손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림원의 이 같은 매력은 분재를 30년 동안 해온 방한숙 원장이 손수 조경, 식재 배치, 물 흐름 하나하나

실내 전시관 내부.

모두 앞장서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한숙 원장은 “세월이 흐르면서 한결 가벼워진 삶의 무게와 함께 유년의 뜰처럼 꽃과 녹음으로 채워지는 그런 박물관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모든 이들과 공유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땀과 노력으로 남은 여생을 이곳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힘들었던 많은 시기들을 거치면서 고유 수종이 일본인에 손에 의해 등록되는 일이 많았다. 그에 따라 우리 수종들의 로열티를 오히려 일본 등 외국에 줘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방 원장은 “우리의 야생 수종들도 경쟁력을 키우고 번식시키면 충분히 상품화가 가능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첨단 산업과 제조업 뿐 아니라 농업부분에도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생화에 대한 개인의 사랑으로 시작된 방림원이,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생화 박물관으로 성장하면서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지적 즐거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게 되기까지, 방한숙 원장의 열정과 이를 뒷받침한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의 외조가 흐뭇한 미담으로 기억될 것 같다.

 

“피난 중 본 원추리 꽃의 기억이
지금의 방림원 만드는 계기 됐다”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남편에게 고마움 전해

야생화가 좋아 야생화와 함께 사는 노년을 선택한 방한숙 방림원 원장. 보성파워텍이라는 건실한 전력기기 중견기업 회장의 아내로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생면부지인 제주로 내려와 스스로 방림원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어려운 길을 택한 방 원장의 선택은 충분히 궁금해질 만한 일이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방한숙 원장을 찾았을 때도 방 원장은 목장갑과 호미를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방림원과 하나가 돼 있었다.

○ 방림원을 세우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남편이 은퇴한 후 노후를 보낼 곳으로 제주를 생각해 방문했다. 별장 부지를 물색하고 원래 가꿔온 야생화와 분재를 옮기는 중에 엄청난 양의 야생화들을 본 한 지인이 박물관을 제안해 방림원 건립을 시작하게 됐다.

○ 야생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 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7살이었다 엄마와 같이 짐을 싸고 이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산에 핀 노란색 원추리 꽃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텃밭에 수많은 이름 모를 들꽃을 가꾸시던 유년시절 어머니의 모습과 동경이 야생화 사랑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또 1980년대 초 한전 직원이었던 남편의 출장을 따라 일본을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열린 철쭉 전시회에서 5가지의 꽃이 한꺼번에 핀 분재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귀국하자마자 분재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배움의 재미가 나날이 즐거웠다. 분재를 하다보니 야생화, 고사리 등으로 관심이 뻗어나갔다. 
 

○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께서 방림원에 어떤 도움을 주셨는지? 

-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준 남편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2003년부터 제주도에 내려온 후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방림원 건설 당시에는 고생하는 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는지 공항에서 헤어질 때 마다 서로 부둥켜 울곤 했다. 지금은 골프 잘 치는 것보다 예쁘게 꽃을 가꿔온 나를 더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 방림원을 찾게 될 전력계 관계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나 또한 전력계에 관계자라면 관계자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전력산업 발전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시는 관계자 여러분! 언제나 꽃보다 아름다운 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있기에 세계 야생화 박물관 방림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항상 가정의 행복과 기업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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