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그리고 유치한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유쾌한 그리고 유치한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7.03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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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삼거리 극장

최근 대종상에서 작품상을 받아 세간을 놀라게 했던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언제 개봉됐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극장에선 사라졌지만 영화가 가진 작품성과 삶을 아우르는 통찰력에 알 만한 사람들은 <가족의 탄생>의 수상을 박수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가족의 탄생>이 개봉되었던 2006년에는 이처럼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몇몇 마니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던 주옥같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2006년 부천 판타지 영화제 개막작이자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에 빛나는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이다.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단은 어느 비오는 밤 활동사진을 본다며 집을 나간 할머니를 찾기 위해 삼거리극장에 다다른다. 언젠가 할머니가 삼거리 극장을 꼭 찾을 것이라는 생각에 극장 매표원으로 취직을 하게 된 소단.

하지만 이 극장,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드라큘라처럼 긴 망토를 두른 극장주는 매일 밤 자살을 꿈꾸고, 좀비 같이 음울한 분위기의 극장 직원들은 밤이 되면 화려한 옷을 입은 유령의 모습으로 춤과 노래의 향연을 벌인다.

하지만 소단은 그들이 두렵지 않다. 오랜 외로움과 무료함에 지친 그녀에게 그들의 판타스틱한 춤과 노래는 오히려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던 것.

그렇게 혼령들의 연희에 동화되어가는 소단.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뿐, 재정 상태의 계속된 악화로 극장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어떻게든 할머니를 엮어주는 마지막 끈과 혼령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잃고 싶지 않은 소단은 의외의 기회에 할머니와 극장의 혼령들, 그리고 극장주가 같은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뮤지컬이고, 컬트!’라고 외치는 미완성의 문제적 작품

대한민국 최초의 판타스틱 뮤지컬을 표방하는 <삼거리 극장>은 새롭고, 유쾌하며, 독특하다.

영화 속 의상과 몇몇 장면들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비틀쥬스>를 떠오르게 하며(특히 극중 모스키토는 모든 면에서 ‘비틀쥬스’에 대한 오마주가 분명하다) 그들의 노래와 춤사위는 <록키 호러 픽쳐쇼>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처럼 판타스틱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맛있게 버무려 낸 이 영화는 그간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컬트스러움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춤이야 뭐 규모가 크거나 수준 높은 동작들을 펼쳐내는 게 아니라서 뒤로 미뤄 두더라도, 노래는 최고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는 극중 완다의 ‘똥 싸는 소리’를 비롯해 ‘자바라 춤을’, ‘밤의 유랑극단’ 등 9곡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그간 일반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뽕끼’의 향연이자, ‘생 날 어휘’의 음유시다.

나쁘게 말하자면 저속하고, 좋게 말해도 당돌하다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음악적 시도는 <삼거리 극장>의 분위기와 맞물려 영화적 생동감을 증폭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영화판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인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연극판에서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절제된 스크린이 아닌 연극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듯 연기한다.

그들의 표정과 동작은 과장되어 있는데, 딱 연극과 뮤지컬 속 그것이다.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들의 익숙하지 않은 연기에 조금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에 다다르면서 그런 어색한 불신은 자연스레 배우들에 대한 애정으로 바뀐다. 마치 실제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듯 감각적인 연출과 배우들이 뿜어내는 생기발랄함에 자연스레 동화되는 것이리라.

이처럼 <삼거리 극장> ‘이것이 뮤지컬이고, 컬트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그간 한국 영화들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뭉뚱그려낸 뷔페식 만찬이다.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히 몰입하게 된다. 새롭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궁금증이 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삼거리 극장>이 그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훌륭하게 닦아낸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영화가 가져야 할 설득력과 내러티브에 대한 보상이 될 순 없다.

실제로 <삼거리 극장>은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있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는 갑작스런 혼령들과의 조우에 당황하다가도,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그들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극중 주인공인 소단의 경우 더욱 뚜렷하다. 또한 아무리 시공간을 뛰어 넘나든다고는 하지만 통사적 구성에 있어 각본은 그 힘을 잃고 만다.

한편, 혼령들이 어떠한 이유로 죽게 됐는지, 왜 그들이 함께 삼거리극장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불충분하고, 사장의 치열한 자기연민도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극중 인물들의 과거를 하나로 이어주는 <소머리인간 미노수 대소동>이 왜 영화에 출연한 그들조차 볼 수 없는 ‘비운의 작품’이었는지도 도통 모르겠다. 새롭고 화려한 미술과 음악의 힘을 내러티브 없는 드라마가 도려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서사고, 서사는 개연성을 전제로 하는 예술이다. 단지 독특하다는 것으로 빈약한 서사의 저울을 수평으로 맞출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삼거리 극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 작품’임에 분명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속에서 이처럼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골라내서 볼 수 있는 눈을 키운다면, 당신이 가진 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은 분명히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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