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빛을 밝히다, 하동에서 만난 박노열 부장
남도의 빛을 밝히다, 하동에서 만난 박노열 부장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7.07.0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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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 인] 남부발전 하동화력본부 공사관리부 박노열 부장

인생의 반 이상을 남도에 살다보니 그 몸 곳곳에는 굽이굽이 산길 물길이 나 있다. 여름날 아침, 백사에 쏟아지는 열사를 피해 훠이훠이 바다로 떠났던 강물, 밤이면 허연 머리를 들고 일어나 거푸 몸을 저으며 해인의 길을 따라 하동포구로 흘러 바다의 별에서 붙여 온 등불을 마을마다 옮겨놓는다. 이렇게 평생의 반은 뭍으로, 반은 바다로 흘러 다니다 이제사 남도의 시원을 수혈한다.

하동화력발전소의 박노열 부장과 약속한 월요일, 바쁜 아침의 시간대를 피하려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났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으로 기억될 올 여름도 정점으로 흐르고 가는 길 곳곳마다 강물도 흐른다. 서울서 하동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급하면 진주로 가 하동행 버스나 기차를 타면 되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구례로 들어가 지리산 자락을 즐기는 것도 좋으리라. 인디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넉넉지 않은 출장 일정이어서 빠른 길을 택했다.

산을 몇 구비 돌고 강을 수차례 건너고 나니 진주에 들어섰다. 거기서 또 남도를 타고 서로 100리를 가니 하동이다. 하동에는 섬진강이 있고 바다가 있다. 그리고 야생차밭과 재첩국이 있다. 하동은 이미 ‘섬진강’과 ‘지리산’의 이름값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고장이며, 예전부터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이기에 더욱 살아가는 이야기가 풍부하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상 하동은 영·호남의 교류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섬진강을 따라 발달된 자연·문화지역이어서 벚꽃축제와 토지문학제 등 지역특성의 전통적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하고 갈사만 경제특구(380만평, 5개단지)조성 예정으로 주민들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고객특성은 주택용, 농사용 고객이 전체 고객호수의 80% 이상으로 공장이나 기업들에 비해 수용성이 영세하고 비닐하우스(딸기, 오이 등), 양식장 등 특수고객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하동읍에서도 가덕리의 끝자락까지 달려가니 섬진강물의 마지막 목적지인 남해바다 앞에 하동화력발전소가 보인다. 엄청난 규모의 발전소 광경 앞에 주눅이 든다. 박노열 부장이 있는 사무실은 별관처럼 잘 지어진 건물 2층, 인자하지만 엄할 것 같은 인상의 그가 거기에 앉아있다.

대관, 대민업무가 항상 가장 어려운 문제

발전소 시운전부터 건설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두루 거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업무 얘기로 말문을 연다. 박 부장은 현재 하동화력에 추가로 지어지고 있는 7, 8호기 공사의 공사관리 부장을 맡고 있다.

공사관리부에서는 건설공사를 원활히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인 관리부서로서 공사초기부터 준공까지 건설공정, 공사비, 기자재, 계약, 안전, 환경, 민원관리와 입지확보를 위한 전원개발촉진법 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준공 후 건설정산과 건설기록집 발간 등의 건설사업 관련 제반사항을 수행하며 6개과(공무, 공정관리, 환경, 총무입지, 자재과, 전산과) 다양한 직군으로 이뤄진 24명의 인적구성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마치 업무 현황을 브리핑 하듯 건설공사 내역을 두루두루 설명하고는 최근 공사 현장 주변마다 주민들의 요구와 마찰이 빚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로 맡고 있는 업무가 결코 녹녹치 않음을 우회적으로 알 수 있다.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분진과 석탄가루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근지역 주민들과의 협조 문제가 늘 어려움이다. 특히 박 부장이 관할하는 공사관리부는 발전소를 증설하는 일이기 때문에 증설에 따른 인근 지역에 대한 수용과 보상 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늘 여러 가지 요구와 수용에 따른 시비가 따른다.

특히 7,8호기 건설공사는 기존에 운영 중인 1~6호기에 이어 부족한 인근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해 공사해야 하는 관계로 하동군과는 인허가와 관련해 협의하고, 해수이용과 관련해서는 남해군, 광양시와 어려운 협의과정을 거쳐 하동군 5개 합의서(3개면, 어업인, 3개마을)와 남해군 어업인 합의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건설공사를 착공할 수 있었다.

합의사항의 추진에 있어서 각종 민원인들의 내방이 계속돼 공사관리부 사무실은 야전 전투장을 방불케 했지만 관련자들은 지금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민원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지금까지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오고 있다.

“이런 난제들을 적절히 잘 해결하는 데는 대민업무와 대관업무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꼼꼼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함으로 지금껏 일산, 부산 등지에서 경험한 업무를 바탕으로 그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대처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박 부장은 현재 7,8호기 건설과 관련해서 근접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협상이 원만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남도가 영원한 고향

박 부장은 약 10년간의 부산근무를 마치고 하동에 온 지 3년째를 맞고 있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입사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원래 2남 1녀의 장남으로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10세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3자녀를 도맡아 키우게 된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성실하게 학창생활을 마쳤다.

고등학교 진학 시에 이미 한전과 같은 안정적이고 큰 회사에서 포부를 펼쳐보겠다는 꿈을 갖고 전기과에 입학했지만 집안이 농촌이어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통신병으로 다녀온 후 한때 포철에 입사해 근무하는 등 몇 차례 다른 전철을 밟은 후 집안사람들과 주위의 권유로 79년, 한전에 입사해 호남하력 등에서 연수를 마치고 남제주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발전 시운전 담당(B/O)으로 교대 근무하며 업무를 착실히 익혔고 81년에는 교대근무로서는 최상위의 직무인 SBO를 맡아 직무를 수행했다.

서천화력발전소에서는 운전효율 업무를 5~6년 간 취급했고 전기부로 옮겨 발전설비 유지 및 설계와 관련된 일을 담당하며 경력을 쌓아 90년에는 간부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전기의 공급으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과 건설발전소마다 준공탑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때 가장 보람을 느끼지만 어려운 점도 많아 업무관리에 있어서 교대근무 때문에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주로 오지에 근무하다보니 밖에 나가 데이트할 시간도 없었는데 어느 날엔가는 서울로 선을 보러 갔다가 선 보기로 한 사람과의 약속이 어긋나는 바람에 늘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한 번 만나보기를 권해 왔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 조금 늦은 편인 33세 때 결혼을 했다.

박 부장은 “초기에는 외국인과의 업무에서 I/O체크나 Fucntion체크 관리 방법상의 문제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후에는 그런 문제들을 원활히 해결하기도 했고 외국인들이 우리의 시공사들을 못 믿어 Test가 지연될 때 어려운 시범을 확실하게 시연해 보임으로서 단독 시공 Test가 가능해지기도 했다”고 추억했다.

북제주에서는 WH의 슈퍼바이저와 전력연구원에서 온 5명과 함께 내연이설 시운전 테스트 중, 제어컨트롤의 한 선이 접지된 것을 모르고 가스 조절 밸브 테스트에 계속 실패하자 직원과 함께 조작을 시도하다가 Trip 되는 바람에 슈퍼바이저가 철수해 애를 먹었는데 당시의 부장과 소장은 직원들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고 그들을 설득해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부장은 91년도에는 일산에서 열병합 건설공사의 전기과장과 제어과장을 거쳐 공사를 감독하는 시공과장으로 근무했고 96년도에는 부산 복합화력 건설공사의 공무과장으로 부지구입, 민원업무 및 인허가를 위한 대관업무 등을 담당했다.

박 부장은 “처음에는 민원 대관업무에서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어려워 힘들었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설득력을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해 스스로의 노하우를 얻게 됨으로서 그 후 대인관계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부산서는 LNG공사 중단으로 어려움 겪기도

박 부장은 96년도에 시작된 부산의 열복합 LNG공사가 2000년, 갑자기 LNG연료의 경제성과 효율성 문제가 제기돼 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한 때 마음이 무거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부장은 그러한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그 시기를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아 모대학에서 전자정보학과를 마치고 학사학위를 받았다.

“서천화력발전소에서는 석탄분진의 민원으로 시작된 주민들과의 갈등이 커져 가두시위와 데모로까지 번져 한동안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이때 뼈저리게 깨달은 점이 초기 대응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부장은 건설현장의 시공, 공무 분야에서 그동안 계속 근무해 오면서 많은 일을 겪어왔고 이제는 모든 팀을 관할하는 부서장으로서 그가 경험한 실수를 후배들이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밖에서는 자상한 형 같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고 책임감을 강조하는 카리스마형이다.

“현장 업무를 많이 하는 건설 분야에 있어서 최근에는 어려운 일을 기피하고 계산적인 요즘 사람들의 경향 때문에 다들 이런 일을 선호하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전력건설의 대를 이어갈 많은 젊은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 나간다면 분명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항상 긍정적 사고로 성실히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 온 박노열 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첫째가 건강이다. 그 이유는 건강해야만 일 할 수 있고, 건강해야 가족끼리도 화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이다. 자기 직장, 자기 일에 애착이 있는 자는 어수룩하게 일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일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장 큰 관심이며 성실의 이유다. 그것은 사랑이고 더 나아가 그가 꿈꾸는 휴머니즘이다.

엄하지 않은 아버지가 있으랴. 엄할 땐 엄해도 박 부장은 가족과 늘 친구처럼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편하게 서로 대할 수 있어야 대화하기가 쉽고 많은 대화가 있어야 화목을 이룰 수 있다는 소박하고도 겸손한 진리가 그 속에 담겨있다.

일 외에 특별히 하는 게 있다면 가족들과 자주하는 탁구다. 편을 짜 복식으로 게임하고 내기도 하며 한바탕 웃고 즐기는 운동이 최근에는 가장 큰 낙이다. 또한 등산도 좋아하는데 바빠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산이라도 들러 자연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일에 철저를 기하는 것은 공사를 원활히 마쳐 발전소 건설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지만 저도 그렇게 성장해 왔던 것처럼 우리나라 발전 산업의 훌륭한 인재를 키워낼 욕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한 장교 밑에 ‘어리버리’한 병사가 견디겠습니까.”

자상함과 열정을 가진 박노열 부장은 결코, 저 웅장한 발전소 건물 앞에서도 작지가 않다.

▲ 하동화력발전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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