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도 가장 저렴한 수준의 전기요금을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 전기요금은 원가의 94% 정도 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낮은 요금 때문에 난방설비도 전기로 하다 보니 겨울철 전력사용량은 역대 최대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의 피해도 크다. 광고의 낮은 전기요금만 믿고 가정용 전기난방을 쓰다보면 누진제 때문에 몇십만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원가의 100%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 가정 소비자들은 전기를 제 값 주고 사서 쓰는 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은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2007년 3,534억원, 2008년 4,185억원, 2009년 523억원 등 지속적으로 흑자를 나타냈다.
문제는 원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농업용과 원가의 96% 정도 수준인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으로 벌어들인 수입을 가지고 농업용, 산업용 손실을 교차보조 하느라 한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작년 한전의 적자는 약 2조원 가량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전기요금을 몇% 올려서 해결될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요금을 적정한 선에서 올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금 인상마저도 서민 생활 안정 차원에서 정부가 눈치만 보고 있으니 전력계로서는 참 답답한 노릇이다.
낮은 전기요금에 따른 한전의 적자는 해외 발전소 공사 등 해외사업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한 해외공사를 수주하려던 한전은 적자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의심받아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어디 한전 책임이겠는가?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인상은 꼭 필요하다.
전기요금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우선 적자의 주범인 농업용 요금부터 생계형 농업과 기업형 농업을 분리해 전기요금을 부과해야 할 것이다.
수십,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형 농업에 단순히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싼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대책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빨리 새로운 요금제를 개발해 왜곡된 요금 체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또 용도별 요금 중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산업용 요금 역시 반드시 원가를 100% 이상 반영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압별 요금체계와 연료비 연동제, 실시간 요금제 등의 대안들도 하루 빨리 시행돼야 국내 최대 공기업 한전의 적자를 막을 수 있으며, 선진적인 전기요금 체제로 국가경제와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주택용 요금의 누진제는 500kW만 넘어가면 십만원 단위의 요금을 내게 하는 만큼 전력사용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를 감안해 요금 구간을 더욱 세분화해야 할 것이다.
월간저널 Electric Power 회장 고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