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변전소의 小統一
평화변전소의 小統一
  • 회장 고인석
  • 승인 2007.07.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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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4일 정오. 조선전업주식회사의 급전사무실의 모든 전화기가 동시에 요란한 벨 소리를 울려댔다.

평양 제1변전소~수색간의 평양선의 송전이 끊겼다는 수색변전소의 전화보고를 필두로 왕십리선, 옹진선, 개성선, 한강선 등 북한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모든 송전선이 일시에 차단 된 것이다.

10만kW에 가까운 전력이 일시에 단전이 된 것이다. 이른바 “5.14단전”. 전력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날이었다.

남한 수요전력의 70% 이상을 대남송전에 의존하던 당시로서 우리사회가 겪었을 혼란을 상기해 보면 거꾸로 피가 솟고도 남을 일이었다.

해방이후 단전조치 전까지 만해도 대남송전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무난했었다. 겨레의 피가 흐르듯 전력도 흘렀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 간 체제의 벽이 점점 두꺼워져 갈수록 송전선도 이상 징후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북한은 전력공급을 남한 압박의 통제수단으로 사용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남한의 전력관계자가 비밀리에 평양으로 잠입해 북한 전기총국에 들러 사정도 했으며, 전력 수전요금도 그들의 요구대로 계속 올려 주었다.

처음에는 전력요금이 너무 적다고 불평을 하다가 종래에는 전력요금 대상물자의 양과 질이 모자란다는 터무니없는 불평을 구실로 삼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기어이 무지막지한 단전조치를 단행해 버림으로써 남북의 전력은 물론 겨레의 핏줄까지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59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6월 21일.

개성공업지구의 평화변전소가 준공되어 공식적인 송전이 거꾸로 시작된 것이다. 북으로부터 자행된 어처구니없는 송전중단 60여년 만에 남으로부터 송전이 개시된 것이다. 참으로 온갖 감회가 서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과 마음이 짜릿하게 저려온다.

전력입국을 외치며 달려온 전력인들이 이뤄낸 감격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력은 곧 국력임에, 반세기전 속수무책으로 흘려야 했던 통한의 서러움도 이제 새로운 송전으로 날려 보낼 수가 있겠다.

최대 20만kW까지 전력공급이 가능한 평화변전소의 준공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지 않을 겨레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전력산업과 함께하는 우리 전력인들이야말로 그 느낌이 특별하고 남다를 것이다.

10만kW의 송전중단으로 겪었던 치욕과 수치를 이겨내고 20만kW를 여유 할 수 있는 우리 전력의 힘과 기술이 가져다 준 자부와 긍지를 전력인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문산변전소로부터 16km에 불과한 거리에 48기의 철탑을 세우기에 걸린 반세기. 통일의 당위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이제 전력이 본격적으로 흘러 빛을 발하고 힘을 내기 시작했으니 머지않아 식어버린 겨레의 핏줄도 따스한 온기를 되찾아 힘차게 흘러내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력 만세, 통일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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