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수술 유감
정관수술 유감
  • EPJ
  • 승인 2010.09.10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용현의 꽁트 마당 (25)

내가 고향친구 진식이를 서울에서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세무공무원을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온 때인 10여 년 전 이었다. 그는 올라오자마자 빌딩과 주택의 방수(防水) 공사를 전담하는 설비점을 차렸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가 새벽기도 때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 ‘방수왕’은 비가 새는 곳이나 갈라진 틈새에 바르면 곧 굳어져서 플라스틱처럼 되는 희한한 제품이었다. 그 방수왕은 텔레비전에도 소개가 되어 한 동안 그의 사업은 크게 번창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내리막은 있는 법, 잘 나가던 그의 사업도 공사대금을 못 받은 곳이 늘어나 고전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자금압박으로 인해 사업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두 번째 시작한 사업은 중소기업의 연구소에 근무하는 그의 친구가 개발한, 미백(美白) 효과가 탁월한(?) 액체비누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특허출원까지 해놓고 의욕적으로 덤볐으나 판매에서 한계에 부딪쳐 얼마 안 가서 그 일에도 손을 떼고 말았다. 두 번에 걸친 사업실패로 그는 거의 재기불능상태가 됐다.

마침내, 그가 살던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고 그 차액과 주위에서 빌린 돈을 합쳐서 세 번째 시작한 사업이 식당이었다. 주로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하되, 근처의 직장인들까지 염두에 두고 기사식당을 차렸다.

내가 진식이의 식당개업 소식을 듣고 찾아간 것은 그가 개업한 지 몇 달이 지난 때인 2년 전의 일이다. 40여 평 정도의 규모에 홀과 방을 만들어 한꺼번에 80명 정도를 소화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그가 식당 초년병으로서 겪은 고생담을 들어보니 정말 실감이 났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가락동시장과 중부시장을 돌아다니며 당일 필요한 재료를 사와서 부지런히 손질을 한 다음, 식당청소를 끝내면 오전 10시쯤이 된다고 한다.

점심때는 직장인들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고, 밤에는 운전기사들을 접대하다 보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한 시,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홀 옆에 붙어있는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식당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지는 90kg에 육박하던 그의 몸무게가 오륙 개월 사이에 68kg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날이 살이 빠지는데 주방일을 맡고 있는 그의 아내는 나날이 몸이 불어났다. 한 달에 한 번씩 있어야할 그것이 없어진 지도 벌써 몇 달이 되었다고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그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아내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었다.
‘혹시 임신…?’

그럴 리가 없었다. 전에 예비군 동원훈련 때 정관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씩 둔 아들과 딸이 모두 중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다시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가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축하합니다. 임신 7개월입니다.”

뭐, 임신? 그는 귀를 의심했다. 정관수술을 받았는데 임신이라니…. ‘그렇다면 아내가 딴 남자를…?’ 아니다. 아내와 하루 이틀 살았는가. 날짜 계산을 해보니 식당을 시작할 무렵에 임신이 된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없었다. 죄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의사에게 중절수술을 부탁했다. 그러나 수술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산모가 나이가 많아 후일 출산도 쉽지 않을 거라며 자주 병원에 들러 산모의 건강을 체크하라고 했다.

그보다 네 살이나 많은 그의 아내는 그때 40대 초반이었다. 또 세 번째 아이는 진료나 분만 시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인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관수술을 받은 증명서를 찾아들고 부리나케 차를 몰아 과천으로 향했다. 보건복지부장관실 앞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탓에 건강보험 담당과장을 만날 수 있었다.

국가에서 주선한 병원에서 정관수술을 받았는데도 임신을 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그의 얘기를 듣고 난 과장이 약간 빈정거리듯 말했다.

“정관수술을 했다고 100% 피임이 되는 것은 아니오. 시술자 천 명 중에서 한두 명은 복원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반드시 당신이라는 확증도 없지 않….”

그 과장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벌겋게 상기된 진식이가 멱살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만류를 하지 않았으면 우악스런 진식이의 주먹이 그 과장의 턱을 날릴 뻔했다.

주위 사람들의 설득과 주선으로 그는 다시 과장과 마주앉게 되었다. 결국, 과장은 뱃속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진료 및 출산 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병원 한 군데를 지정해 주며 무슨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

주방일을 하던 아내는 산통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그 병원에 입원했다. 난산이었다. 입원한 다음날밤늦게 낳았으니 참으로 천신만고 끝에 아이를 낳은 셈이었다. 딸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 아내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며칠 만에 다시 식당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아이는 담요에 싸서 방 한 귀퉁이에 눕혀 두고서….

내가 다시 그의 식당을 찾아간 것은 그가 아이를 낳은 지 일 년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밤늦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도 운전기사로 보이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한 아기가 홀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있었다. 바로 그 문제(?)의 아이임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카운터에 앉아있는 그 친구 옆에 앉으며 요즘은 어떠냐고 물었다.

“응, 잘 돼. 빚도 거의 갚았고…. 요즘은 이 아이의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살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느님이 이 아이를 선물로 주기 위해서 수술한 정관을 다시 푼 것이 아닌가 싶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이 아이를 쳐다보면 온갖 시름이 다 잊혀지거든.”

그 친구가 열을 내며 얘기하고 있는 사이,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이쪽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설비’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