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때 생긴 일
이사회 때 생긴 일
  • EPJ
  • 승인 2010.05.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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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 마당 (21)

내가 요즘 들어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은 총무과 사원들의 인화문제다. 사원들이래야 남자사원 셋과 여사원 둘, 그리고 여자 아르바이트생 하나, 과장인 나를 포함해서 모두 일곱 명인데, 문제는 가장 고참 여사원 조문희 씨와 남사원 백진호 씨 사이가 아주 심각한 불화상태라는 점이다.

경리를 맡고 있는 조문희 씨는 여상(女商)을 졸업한 후 바로 우리 회사에 입사해 계속 총무과에서만 8년동안 근무해온 베테랑 여사원이다. 업무처리 솜씨가 아주 뛰어난 데다, 아무도 스물일곱 살이라고 믿지 않을 만큼 앳되어 보이는 외모 탓에, 총무과의 마스코트로 불리며 임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가씨이다.

군에 갔다 와서 회사에 들어온 백진호 씨는 올해 스물아홉 살로 입사 5년째인데, 한 달에 한 번 개최하는 이사회와 각종 행사, 문서관리 등을 담당하는 총무과의 주무(主務) 사원이다. 약간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성실하고 빈틈없기로 정평이 나 있는 총각사원이다.

전에는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퇴근 후에 둘이 만나 데이트하는 장면이 종종 다른 사원들의 눈에 띄어,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이 사내에 돌곤 했다.

얼마 전부터 무슨 일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가 냉랭해지더니 서로 말도 않고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서로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으니 그게 보통 고역이랴. 급기야 미스 조는 출근하자마자 캐쉬 박스(cash box)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뚜껑을 열어 놓은 채 근무하기 시작했다. 백진호 씨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앞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두 고참이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원끼리도 두 패로 갈라지고 말았다. 여사원은 모두 미스 조 편이, 남자사원은 백진호 씨 편이 되어 사사건건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사무실에는 하루 종일 찬바람이 쌩쌩 돌았다.

나는 두 사람을 화해시켜 보려고 개별접촉을 시작했다. 우선 백진호 씨와 점심을 같이 하며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미스 조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전에 사적인 일로 약간 다툰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이라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거라며, 자기는 미스 조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은 미스 조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요즘 백진호 씨와 왜 그렇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별안간 안색이 바뀌는 것이었다. 자기는 아무 할 얘기가 없다며 그냥 모르는 체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녁 때 둘이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며 한사코 싫단다. 설사 그런 자리를 마련한다 해도 자기는 나가지 않겠다는 거였다.

정말 난감했다. 두 사람을 혼낸다고 사이가 더 좋아질 리도 만무하고, 그런 꼴을 매일 보는 것도 할 짓이 아닐 것 같았다. 또, 둘을 떼어놓자니 조그마한 회사에서 다른 데로 옮길 만한 적당한 자리도 없을 것 같고….

그럭저럭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임원들이 모이는 이사회 때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이사회에 배석하러 옆방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다른 사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그 두 고참사원만 사무실에 남게 되었다. 이사회가 한창 진행 중에, 사무실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곧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사회는 중지되었고,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스 조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백진호 씨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씩씩거리고 서있었다.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다가 급기야 백진호 씨가 미스 조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드디어 냉전이 열전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만 호젓하게 남은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 백진호 씨가 미스 조에게 다가가서 화해를 하자고 했는데, 미스 조가 대답을 하지 않더란다. 대답하라고 계속 다그쳤는데, ‘가까이 오지 마라. 꼴도 보기 싫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홧김에 뺨을 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쯤 되면 화해를 할 것이지, 화해를 하자고 해도 굳이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일은 즉각 이사회에 보고되었고, 사무실에서 여사원을 폭행한 백진호 씨를 징계키로 결론이 났다. 그날 백진호 씨가 자진해서 사표를 내겠다고 했으므로 결국 의원면직(依願免職)으로 처리가 됐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사내에 퍼졌고 며칠 뒤 미스 조도 사표를 내고 말았다. 표면상의 이유는 결혼준비였지만 분명 그 일 때문이었다. 미스 조가 사표를 내자, 백진호 씨의 경우와는 달리 임원들을 비롯해서 다른 사원들이 모두 만류했다. 그러나 아무도 미스 조의 결심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결국 이 일은 두 사람 모두 회사를 떠난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뒤에 다른 여사원을 통해서 진상을 알고 보니, 전에 백진호 씨가 옆 사무실 여사원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미스 조의 귀에 들어가서 그 이후로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미스 조의 질투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다. 여자의 질투란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미스 조가 퇴직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미스 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을 한다며, 회사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을 테니 나더러 와서 축하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꼭 가마’ 고 약속을 했다. 나는 혼자 가느냐, 사원들에게 알리고 함께 가느냐를 두고 고심 끝에, 총무과 사원들에게만 알리고 함께 가기로 했다.

그날 오후, 총무과 사원들과 함께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결혼식이 시작되어 주례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이어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가 됐다. 신랑신부가 돌아섰다.

순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총무과 사원들은 모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신부가 된 미스 조 옆에서 미소를 머금고 서있는 신랑은 다름 아닌 백진호 씨였던 것이다.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설비’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에는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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