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자력의 은인, 시슬러 씨를 추억하며
한국 원자력의 은인, 시슬러 씨를 추억하며
  • EPJ
  • 승인 2010.05.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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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산업이 새로운 수출유망산업이 되고, 국내 원자력발전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모습을 보며 아련하게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한국 원자력의 은인이 한 두 사람일리 없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발전의 장점을 역설해 원자력 정책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시슬러의 고마움은 우리 전력과 원자력계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워커 리 시슬러(Walker Lee Cisler)는 1897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나 코넬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부터는 미국 정부의 전쟁물자생산국에서 전력관계 일을 담당했고, 전후에 디트로이트의 에디슨 사에서 전무, 사장, 회장을 역임했다.

시슬러는 이 기간 동안 세계에너지회의(WEC) 의장, 에디슨전기협회(EEL)회장, IEE 회장, 미국원자력산업회의 의장 등을 지내면서 미국 에너지계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을 부흥시키기 위해 진행된 마셜플랜에 참여하면서 전력과 경제개발 분야의 저명인사로 떠올랐다. 또 그는 북한의 단전조치로 전력이 극도로 모자랐던 한국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시슬러는 자신이 일할 때 건조된 발전함을 긴급히 한국에 보낼 것을 건의했고, 그에 따라 인천항에 엘렉트라 발전함이, 부산항에 자코나 발전함이 들어와 전기를 공급했다.

1956년 시슬러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을 방문해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 그는 나무로 만든 작은 ‘에너지 박스’를 꺼내 그 안에 있는 우라늄과 석탄을 이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우라늄 1g이면 석탄 3톤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는 에너지다.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캐낼 수 있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우라늄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을 하려면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지금부터 젊은 사람을 키운다면 한국은 20년 후 원자력발전으로 전깃불을 켤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시슬러의 우라늄과 석탄을 대비한 알기 쉬운 설명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시슬러의 말에서 원자력발전을 확고하게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원자력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과연 원자력발전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시슬러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원자력에 대한 도전을 결정하게 됐다.

시슬러는 당인리발전소(현 서울화력발전소)에 2만5,000kW급 3호기 건설을 추진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플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시슬러는 우리나라에 AID차관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한국은 1956년 당인리 3호기와 마산·삼척발전소를 준공해 부족한 전력을 메울 수 있었다.

또 시슬러는 한국이 북한에 앞서 WEC에 가입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WEC 가입신청서를 내자 북한의 가입 승인이 보류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 사실을 박영준 한전 사장에게 알렸다.

박영준 사장은 즉시 상공부와 외무부를 움직여 한국도 곧바로 가입신청을 하고, 시슬러의 막후 도움으로 한국이 먼저 가입할 수 있었다.

과거 원자력의 막내에서 명실상부한 원자력 강국이 된 대한민국을 지켜보며 아마 고인이 된 시슬러 씨도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원자력 초창기를 일궈낸 여러 영웅들과 은인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간저널 Electric Power 회장 고 인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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