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등불을 지키는 영원한 파수꾼이고 싶다
고향의 등불을 지키는 영원한 파수꾼이고 싶다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7.06.05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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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 인] 강병민 한전 당진지점 배전운영실장

▲ 강병민 실장
집 앞에 죽도록 서있는 가로등 하나, 너는 누구에게 한 번 따뜻한 빛이었던 적 있었냐고 등불은 묻는 듯 깜박거리다 숨이 멈췄는데‥ 맑은 영혼의 우물에서 순수 하나 밤새워 길어내던 꿈, 멀리 달아나고‥ 밖에는 어느 새 다녀갔는지 등불에 촉광 하나 밝혀놓고 사라지는 한 사람 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애초에 부유하지만 현실주의자였던 상인 아버지와 온화하고 신앙적인 성품인 어머니와의 상이한 성품의 사이에서 성장했다 한다. 그는 청년시절 누구나 그렇듯 성공과 명예를 좇아 출세를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고 병까지 얻게 된다.

질병은 좌절을 가져오게 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게 되는데 그가 다시 세속적 가치에 대한 경멸을 채 떨치기도 전에 두 번째 참전을 계획하고 있을 때 환상 같은 꿈이 두 번씩 이어지면서 그의 속된 열망은 끝이 나게 된다. 자신이 어디에 쓰이도록 태어났는가를 깨달은 것이리라.

당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전에 읽었던 ‘성자 프란체스코’에 대한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 성인이 된 그가 지냈던 성당에는 지금 가시 없는 장미가 핀다고 한다. 가시조차 관대와 포용의 깊은 사랑으로 무디어진 것일까.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수많은 기도문에서 빛은 우리가 건너가야 할 안식처가 된다. 하지만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71년 한전에 첫 발, 배전분야 베테랑으로 인정받아

당진가는 길, 초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버스를 탔다. 벌써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푸릇푸릇 벼가 자라고 일찍 찾아온 더위에 놀란 수풀들이 간간이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고 있다.

서해안시대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인지 시내에 접어드니 여기저기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많은 공사현장이 눈에 뜨인다. 오후 3시의 시간은 이렇게 다가와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어 놓는가 보다.

“터미널까지 나가려 했는데 일찍 오셨네요.” 직원의 안내로 들어서자 강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민다. 당진지점의 강병민 배전운영실장은 몇 번이나 터미널까지 마중 나오겠다고 했지만 한 30분 일찍 도착한 김에 사람들에게 물어 지점에 들어선 시간은 약속보다 10분 빠른 시간이었다.

강 실장은 손님이 왔다며 소속 팀장인 이경로 설비관리팀장 등 팀장 몇 분과 함께 2층 지점장실을 노크해 고웅렬 지점장님을 소개하며 아마도 자신을 취재하게 된 건 당진지점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된 덕 때문일 것이라며 본인의 일이 기사화되는 일을 부담스러워 한다.

사실 이번 취재는 애초에 배전분야에 있어 베테랑인 한전인에 대해 기사를 써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배전운영처에 취재원 소개를 의뢰했는데 본사에서 서슴없이 당진지점의 강 실장을 소개했던 것이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한전에서 일을 하게 된 지가 36년이 됐네요”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훤칠한 키에 믿음직한 모습의 강병민 실장은 71년도에 처음 한전에 발을 들여놓았다.

부모님은 재일한국인이어서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왔고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강 실장은 일찍 당진으로 이사 와 군복무 시절 외에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을 정도의 토박이로 어린 시절 집에서 정미소를 운영한 덕에 비교적 어려움이 없이 자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오래 있어주지 못했다. 두 분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통에 한 동안은 세상에 반항하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등댓불처럼 평생의 길을 밝혀준 건 부모님이었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의 권유로 알게 된 한전의 기능인력양성반에 들어가 이론과 실기를 배우며 한전인의 꿈을 키운다. 배전전기원의 일이란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의 송전경로를 거친 전기를 변전소에서 각 가정 또는 일반고객에 안정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 폭설복구 작업
“무재해 10배 달성, 하나 된 팀웍이 이뤄낸 결과”

현재 당진 배전운영실에는 13명의 인원이 3조 4교대로 무사고를 책임지고 있는데 고장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을 사전에 적출해 돌발적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배전자동화 시스템을 운용하고는 있지만 자연재해 등 불가항력의 사고는 어쩔 수가 없다. 또한 당진은 해안지역이기 때문에 태풍 등 염해를 입을 수 있다.

서해안 개발의 관문으로 이 지역에 건설 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는 점도 사고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아직 채 정비되지 않은 거리를 빈번하게 달리는 공사장 차량들이 전신주를 들이받기도 하고 굴착을 위해 땅을 파다가 전선을 훼손해 정전사고를 내기도 한다.

지역적으로도 이러한 여러 난제들이 있지만 수요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만큼 현장의 인력수급이 따라가 주지 못해 일손이 부족한 것도 실장으로선 어려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어려운 지역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진지점은 작년 전국 배전기술경진대회 자동화부분에서 충남대표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사내 무재해 10배수(4800일)를 지난 5월 11일 이미 달성했고, 올 9월 25일 무사고 1000일 달성을 위해 전 직원이 매진하고 있다.

“이같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정들을 성취할 수 있었던 건 고웅렬 지점장님 이하 각 팀의 전 직원이 하나의 팀웍으로 뭉쳐 이뤄낸 결실입니다.” 자신도 그 팀 속의 한 일원일 뿐이라고 강 실장은 내내 수없이 강조했다.

“현대인에게 물 같은 존재인 전기를 공급하는 국내 최대의 공기업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이 곧 사명감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동안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해 여름, 태풍으로 설비가 유실돼 복구를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버스가 작업차를 들이받아 20여m를 튕기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새벽 3시의 정전으로 양식장의 메기가 죽으면서 업자가 본사에 메기를 뿌리겠다며 거액의 보상을 요구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고의 원인을 밝혀 피해 주민을 설득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겠지만 저에게는 그때가 근무하던 중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도 큽니다. 앞으로도 고객의 고충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자세로 임할 생각입니다.” 그는 새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

최근에는 고장이 발생했을 경우 5분 이내에 수리가 완료될 수 있도록 실제 비상시를 대비해 분기별로 1인당 10회 이상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단전 및 수리를 요할 때 사전안내를 해주고 그에 대한 처리를 마친 후 사후 그 결과를 알려주는 ‘해피콜’ 제도를 실시해 주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

“강 실장은 가장 가까이서 운영시스템을 관리합니다. 물론 사는 집이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운영실을 맡고 있어 쉬는 날이건 밤이건 가장 먼저 달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임감도 포함되겠지요.” 배전운영실을 관리하는 설비관리팀 이경로 팀장의 믿음이 두툼하게 느껴진다.

당진지점은 또한 직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작년, 한전 배전운영처가 주관해 실시한 2006년도 One Year-TF에서 최우수 사업소로 선정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 강병민 실장(사진 가운데)이 배전운영실 직원들과 업무 회의를 하고 있다.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

업무적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을 위해 강 실장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 동료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은 물론이고 등산과 골프도 즐긴다. 마라톤은 가끔 대회에 참가도 할 정도다.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인근의 대학에서 환경공학사를 취득했고 타 대학에서 지역개발대학원을 수료했다.

“살면서 터득한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포용과 관대’지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개인의 능력보다 전체의 능률을 생각하고 다른 무엇보다 맡은 바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가장 가까이 있는 동료들의 눈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 진실하라고 조언한다. 

“남은 직장생활도 지금같이 항상 업무에 충실할 것이고 그 후에는 오랫동안 몸담고 살아온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복지사업을 펼치고 싶은 꿈도 있다”며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다가 “하지만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라며 이제는 세상을 품을 수 있을 만큼 관대해진 얼굴의 강병민 실장이 허허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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