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의 전쟁
까치와의 전쟁
  • EPJ
  • 승인 2010.02.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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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 마당(18)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도 함 씨의 입가에 흐르는 미소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의 손에는 거금 80만원을 주고 구입한 총이 쥐어져 있었다.

며칠 전, 인천 월미도의 한 의원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총포사에서 6.4구경 산탄공기총을 샀었다. 다른 총은 방아쇠뭉치를 파출소에 맡겨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집에서 보관할 수 있는 산탄총을 고른 것이다. 난생 처음 발급 받은 총포소지허가증을 다시 꺼내보았다. 벌써 다섯 번째이다.

뱃머리에 달려드는 갈매기를 보면서 자꾸만 총을 꺼내 겨누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애써 참았다. 영종도가 가까워지자 저 멀리 나무 위에 까치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요즘 까치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나무 꼭대기에 붙은 감이야 저들 식량이라 치더라도,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와서 수확을 앞둔 배와 사과를 쪼아 놓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집 인근에서 까치 때문에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함 씨가 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동네 어른으로부터 ‘까치 대장을 잡아서 그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으면 까치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며칠 동안 망원경으로 집 주위에 사는 까치들을 관찰한 끝에 드디어 대장을 찾아냈다.

덩치가 크고 눈 밑에 갈퀴 같은 것이 유달리 크게 돋아나 있는 놈, 그 놈은 겁이 없고 늘 앞장을 선다. 다른 놈은 나무에 앉을 때 조심조심 사람을 피해 멀찍이, 그리고 높은 곳에 앉는데 비해 그 놈은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앉아 안방까지 들여다보면서 깍-깍- 하며 울어댄다. 그러면 금방 졸병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 놈을 잡아야 한다, 그 놈을.

마을 어귀에서 버스를 내렸다. 집에 들어서자, 그의 집 감나무 위에 까치들이 몇 놈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 대장까치는 옆집 감나무의 야트막한 가지에 앉아 있었다. 집이 조용했다. 학교에 간 애들은 아직 올 때가 멀었고, 여편네는 아침에 강화도 장에 간다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자마자 총알을 장전했다. 대장까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거리가 좀 멀기는 해도 쏘면 떨어질 것 같았다. 그가 누군가. 군대생활 할 때 우수한 사격성적으로 포상휴가까지 가지 않았던가.

마루 기둥에 기대서 겨누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깃털이 날리면서 그 놈이 장독대 쪽으로 비실비실 떨어졌다. 총알이 날개에 살짝 스친 것 같았다. 장독대쪽으로 뛰어갔다. 장독들 사이에서 그 놈이 퍼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시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쨍그렁’ 하며 항아리 하나가 박살이 났다. 아들 세환이가 용돈을 벌기 위해 틈틈이 뱀을 잡아 넣어둔 항아리였다. 뱀들이 스믈스믈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여섯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아뿔사! 그는 재빨리 마루에 총을 올려놓고 부엌에서 큰 집게를 들고 나와 마당에 기어다니는 뱀을 잡았다. 그 사이 대장까치는 다시 힘을 차렸는지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뱀 세 마리를 잡아서 비료포대에 담았다. 또다시 한 마리를 잡아 포대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대가리를 돌린 뱀이 그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물었다. 순간, 깜짝 놀란 그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물린 자리에서 피가 솟았다. 독이 퍼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물린 자리를 여러 번 입으로 빨아서 뱉어냈다. 피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신을 신은 채로 방에 뛰어 들어가 실을 꺼내 엄지손가락을 칭칭 감아 묶었다.

물린 손가락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마당에 길게 뻗어 있는 그 놈을 자세히 보니 독사는 아닌 것 같았다. 빨래집게로 뱀을 담은 비료포대의 입구를 봉했다. 이제 통증은 좀 가신 것 같았다.

댓돌 위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문득 앞집 뒤뜰의 감나무에 앉아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까치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아까 그한테서 총알 세례를 받은 그 대장까치 같았다. 꼬리를 아래위로 까딱까딱 흔드는 게 그를 놀리는 것 같아 또 심사가 뒤틀렸다.

“어쭈, 요놈이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본 모양이군, 내 요놈을 꼭 잡아서 감나무에 매달아놓고 말겠어!”

다시 전의(戰意)가 불 타 올랐다. 그는 다시 마루에 있는 총을 꺼내 그 놈을 겨누었다. 놈이 눈치를 챘는지 휙 날아오르더니 옆 배추밭에 있는 감나무에 앉으려고 했다. 앉는 순간 놈의 머리통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놈이 수직낙하, 배추밭으로 떨어졌다.

명중이다! 놈이 뒤뚱거리며 밭고랑 사이로 기어가고 있었다. 후다닥 뛰어가 놈의 날갯죽지를 꽉 움켜잡았다. 놈의 입에서 붉은 피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놈이 자꾸만 그의 손을 쪼려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섭게 생긴 놈이었다.

부엌에 있는 큰 플라스틱 통에 쑤셔 넣고 뚜껑을 닫았다.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숨이 끊어지면 감나무에 매달아야지.

그때 갑자기 깍-깍- 하는 까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보통 때의 까치소리와는 전혀 다른, 온몸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괴성이었다.

부엌 문틈으로 살며시 내다보니 온 동네의 나무 위에 까치들이 새까맣게 앉아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또 저쪽에서 수십 마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금새 그의 집 마당 감나무에도 까치들이 가득 찼다.

어떤 놈은 그가 있는 부엌문 쪽으로 돌진하듯 저공비행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기도 했다. 얼마 안 있어 영종도에 있는 까치는 다 모여든 듯 온 동네가 깍-깍- 하는 굉음으로 뒤덮였다. 가히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였다.

그는 부엌문의 고리를 채웠다. 갑자기 어릴 때 보았던 영화 ‘히치콕의 새’에서 새떼가 사람을 습격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다시 부엌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 고리를 걸어 잠그고 귀를 틀어막았다. 함 씨의 이마에 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최용현 작가는…>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현). 월간 ‘국세’ ‘전력기술인’ ‘전기설비’ 등에 고정칼럼 연재(현).
작품집에는 ‘삼국지 인물 소프트’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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