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만8,000원
우리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경험하지만 그것들의 겉모습만 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존재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그 존재의 진실을 대변한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신간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에서 저자 존 M. 렉터는 심리학, 철학, 사회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사건들을 언급함으로써 대상화가 우리의 일상이나 의식적·무의식적 활동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누구나 흔히 사용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정의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대상화’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한다는 점, 이를 매개로 인간의 본질적 한계와 가능성을 탐색함에 있어서 통합적인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특히 대상화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와 실례를 중심으로 큰 틀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에서 도출한 통찰들이 만나는 접점과 방향성을 일깨운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불신시대
박경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만2,000원
대하소설 ‘토지’ 저자이자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박경리의 대표 중단편소설이 묶인 ‘불신시대’가 한국문학전집 마흔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특히 이 책은 작가의 13주기를 맞는 올해 5월 5일 출간돼 그 의미를 더한다.
박경리는 1926년 태어나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연이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 고통을 소설로 담았다.
1955년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고 이듬해 ‘흑흑백백’을 실으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는 약 30편의 단편과 2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이번 중단편선은 1960년대 여성 장편소설 중에서도 박경리와 강신재를 연구했던 강지희 한신대학교 교수가 책임편집을 맡았다. 발표 원본에서부터 작가 생전에 출간된 다양한 판본을 비교해 현대 독자가 읽기 쉬우면서도 정확한 텍스트를 확정했다.
고독과 절망의 시대를 살아내면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결벽성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추구, 운명과 제도를 넘어서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매혹”을 놓지 못했던 작가 박경리. 이 책을 읽는 일은 그의 광활한 소설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지음 / 창비 / 2만4,000원
이 책은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극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을 방문해 전쟁 참상을 조사한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의 발자취를 추적한 책이다.
조사위원회에는 세계 주요 국가에서 여성 리더로 활약하던 조사위원 21명이 있었다. 이들은 거대한 폐허가 돼버린 북한에서 전쟁의 양상을 목격했다. 이어 고통을 호소하는 북한 주민들의 증언에 귀 기울였다.
신의주, 평양, 안악, 원산 등 여러 지역을 탐사한 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우리는 고발한다’(We Accuse, 1951)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만들어 7개국 언어로 동시 발간했다.
하지만 미 공군의 가공할 폭격 규모 등 미국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이 보고서는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됐다. 몇몇 조사위원은 본국으로 돌아가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했다.
신간 ‘냉전의 마녀들’ 저자 김태우 교수는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조사위원회 형성 배경, 성격, 보고서 작성과정, 주장의 성과와 한계 등을 국내 최초로 종합 검토했다. 또한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연구의 전환을 가져올 새로운 관점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