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처방에 풍력업계 한숨… ‘RPS제도 2.0’ 도입 시급
땜질식 처방에 풍력업계 한숨… ‘RPS제도 2.0’ 도입 시급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1.03.24 0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 거듭할수록 사업 불확실성 커져
풍력산업 특성 고려 REC 시장 분리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사업성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풍력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모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로 도입 9년째를 맞는 RPS제도를 바라보는 풍력업계 심경은 착잡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던 RPS제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자 부담이 커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두면 풍력개발을 포기하는 민간사업자들이 하나 둘 나올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풍력업계는 국내 풍력개발이 지지부진한 속도를 내고 있는 원인으로 ▲민원 ▲환경 ▲REC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이 가운데 민원과 환경 이슈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자체나 정부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 풀어가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받고 있는 REC는 사업자가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앞선 민원·환경 요인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프로젝트가 지연되더라도 궁극적으로 사업성이 뒷받침되면 개발을 이어 갈 수 있는데 임기응변식 정책으로는 수익 예측이 불가능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제도 도입 9년간 내실 없이 외연만 확장
RPS제도를 운영하는데 기본지침 역할을 하고 있는 공급인증서발급 및 거래시장 운영에 관한 규칙은 2011년 7월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10년 동안 30여 차례 개정작업을 거쳤다. 매년 3차례 이상 규칙 개정이 이뤄진 셈이다. 급변하는 산업환경과 시장 트렌드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2년 RPS제도 도입 당시 13개였던 공급의무사는 올해 23개로 늘어났다. 공급의무량도 642만MWh에서 올해 3,892만6,912MWh(4,710만1,564REC)로 6배가량 증가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2년 8GW 수준이던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19년 20GW 규모로 2.5배 확대됐다. 외형적인 성장 규모만 봤을 때 RPS제도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이 일정부분 먹혀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정책을 믿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선 사업자들이 몇 년 전부터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면서 사업 철수를 고민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SMP와 REC로 이뤄진 수익구조 모두가 변동성이 큰 가운데 불안정한 널뛰기 수익이 이어져 사업자 발목을 잡은 것이다.

태양광의 경우 그나마 장기고정가격 경쟁입찰과 현물시장을 통해 REC를 거래하고 있어 충격이 덜한 편이다. 경쟁입찰 시장 자체가 없는 풍력은 대부분 발전공기업과 체결하는 고정가격계약을 통해 REC를 거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4월 개정된 공급인증서발급 규칙에 따라 발전공기업이 출자하는 신재생에너지사업에 대한 비용적정성을 전력거래소 실무위원회를 통해 미리 검토 받도록 돼 있어 REC 가격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발전공기업의 출자사업 검토 절차에는 전력거래소에서 살피는 사업성검토 이외에 에너지공단이 검토하는 국내산업 기여도 항목까지 포함돼 있다. 사업자 입장에선 두 가지 허들을 넘어야 PF조달을 거쳐 착공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발전공기업의 SPC 출자 승인 지연으로 고정가격계약이 늦춰질 경우 PF조달이 어려워 전체 프로젝트 일정 또한 순차적으로 밀리게 된다. 지난해부터 이 같은 문제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육상풍력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업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프로젝트 앞단인 발전사업허가 직후 REC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풍력사업의 경우 발전사업허가 이후 착공 이전까지 개발행위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는 물론 SPC 출자, PF조달, 풍력터빈 선정 등 준비과정이 광범위하다”며 “이 가운데 풍력터빈 선정은 전체 프로젝트 일정에 맞춰 미리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육상풍력의 경우 착공 1년 6개월 전, 해상풍력은 최소 3년 전에 기자재 공급업체가 확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사업절차를 무시한 채 이미 결정된 풍력터빈을 SPC 출자 승인 과정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라며 “풍력터빈 교체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력·태양광 LCOE 차이 인정해야
풍력업계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때문이다. REC 현물시장 가격에 비해 고정계약시장 가격이 높은 만큼 하향평준화 방향으로 REC 가격을 맞춰야 한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글로벌 에너지시장 동향에 비춰 봐도 풍력·태양광의 LCOE(균등화발전비용) 하락은 국제적인 흐름이란 것이다.

이와 관련해 풍력업계는 기울어진 시장구조와 서로 다른 산업구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일반화하려는 성급한 판단이란 지적이다. 2016년 3월 태양광·비태양광 구분을 없앤 통합 REC 현물시장이 개설됐지만 각종 규제에 묶여 시장에 나온 풍력사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REC 현물시장 총 거래량 892만1,364REC 가운데 79%를 태양광이 차지했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개발기간과 원가구조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는 풍력과 태양광을 동일한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한 점이 지금의 문제를 촉발시킨 원인”이라며 “육상풍력의 경우 개발에만 최소 4~5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계통연계·운송·시공 등의 개발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REC 시장 분리를 촉구했다.

이어 “핵심 기자재만 비교하더라도 태양광 모듈은 기술집약도 높은 전자분야라 가격 하락속도가 빠르지만 풍력터빈은 각종 부품을 조립하는 장치산업에 가깝다는 점에서 단순 LCOE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며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에너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연구보고서에도 풍력과 태양광의 LCOE 차이를 감안해 태양광 REC 가격을 kWh당 15.2원 낮게 제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