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발전사업 겸업 과연 공정한가… 전력망 중립성 훼손
한전 발전사업 겸업 과연 공정한가… 전력망 중립성 훼손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1.02.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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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문가, 전력시장 선진화 역행 우려
공정한 경쟁 없이 탄소중립 실현 불가능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전력시장 공정경쟁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전력시장 공정경쟁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한전의 발전사업 겸업을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입법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전력망 중립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공정한 전력시장 경쟁체제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전환포럼과 기후솔루션·한국풍력산업협회·민간발전협회·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2월 15일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전력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보는 온라인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전력시장의 공정한 운영을 꼽으면서 송배전과 전력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

국가 에너지정책이 계통연계와 밀접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진 상황에서 송배전사업 분리 없이 한전이 플레이어인 발전사업자로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 금지로 공정한 시장경쟁을 보장하려한 제도적 장치가 전력산업 비효율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사례를 통해 전력망 중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사례를 통해 전력망 중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꾸로 가는 한국 전력시장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전력산업 기능분리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서 전력시장 공정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은 전원을 단순히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시스템을 고쳐야 실현 가능하다”며 “무엇보다 에너지전환은 전력산업 기능분리와 공정한 경쟁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특히 송전망을 책임지는 회사는 반드시 별도 사업자가 맡아야 한다”며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급전지시 등 전력망 운영시스템을 고도화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송전망 사업자가 발전사업을 겸업할 경우 불공정한 규칙제정을 비롯해 망투자 차별, 정보 비대칭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입찰과 출력제한의 공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국제 전력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전 가스터빈과 재생에너지 기술개발로 송전망 개방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망중립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며 “2000년대 본격적인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발전·판매경쟁과 망분리체계를 갖춘 경쟁적 전력시장개편이 이뤄진 가운데 최근 소비변화 요구에 따른 탄소중립 경제체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라 발전과 송배전을 분리했지만 이후 구조개편 중단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발전경쟁시장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력망 분리를 기본으로 전력시장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는 국제 흐름과 달리 망중립성 훼손 우려가 있는 한전의 발전사업 허용은 너무 뜬금없는 얘기”라고 밝혔다.

채덕환 풍력산업협회 팀장은 전력시장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까지 수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최덕환 풍력산업협회 팀장(왼쪽)은 전력시장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까지 수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명분 없고 실익 의문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송전망사업을 별도 사업자가 맡고 있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영국 등의 사업구조를 설명하며 망중립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주요국가의 경우 독립된 송전망 사업자가 송배전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력망 중립성과 공평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한전은 송배전과 전력판매 독점은 물론 발전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이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조적 변화 없이 ICT와 같은 외연적 기술을 활용해 정부·공기업 주도로 신규모델을 창출할 경우 민간부문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며 “전력시장 효율화를 위해 공정경쟁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시장가격 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패널토론에 참석한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팀장은 송배전·전력판매 독점뿐만 아니라 전기설비이용계약, REC 비용평가 등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맡고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까지 수행하는 게 과연 공정한 행위인지 따져 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 팀장은 “전기사업 겸업을 금지한 조항이 그동안 민간사업자의 발전사업 진출을 이끈 유일한 유인책이었는데 시장공정성 논란까지 감수하며 규정을 깨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물길 역할을 하는 제도와 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은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명분 없이 부작용만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 국장은 “해상풍력 개발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필요하다는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며 “해상풍력 개발이 더딘 이유는 자금부족이 아니라 낮은 사업성과 수용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전은 이미 SPC 참여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RPS의무량의 80% 정도를 발전자회사를 통해 이행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전이 본연의 업무인 송배전설비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것이 그린뉴딜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은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명분 없이 부작용만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오른쪽)은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명분 없이 부작용만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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