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선수로 뛰다니… 한전 발전사업 진출에 풍력업계 반발
심판이 선수로 뛰다니… 한전 발전사업 진출에 풍력업계 반발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0.12.07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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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공정성 훼손 우려 반대 입장 표명
전력계통 안정화 등 고유업무 집중 촉구
풍력업계는 12월 7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모여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풍력업계는 12월 7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모여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풍력업계가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계통접속·전력판매 등 독점과 다름없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공정한 시장경제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풍력산업협회는 12월 7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한전의 발전사업 참여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한전이 전력계통 안정화 등 고유업무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풍력산업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난 7월 송갑석 의원이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일부 허용을 주요내용으로 대표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 풍력사업 애로사항인 주민수용성과 인허가 문제가 한전의 발전사업 참여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이미 오랜 경험으로 이 부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민간사업자와 발전공기업에 힘을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과 관련된 법률 개정안은 신재생에너지 활성화란 대의와 명분 아래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앞선 19·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개정안 발의 취지와 세부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국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묶여있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을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주민수용성·인허가 현안 한전도 마찬가지
풍력업계가 한전의 발전사업 참여에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경제체제 훼손이다. 한전이 송배전사업과 전력판매 부문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송전용 전기설비 이용계약, REC 거래가격 심의·비용평가 등 심판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인 발전사업자로 나서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풍력업계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안이 상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전은 지난 9월 부사장 직속에 해상풍력사업단을 두고 800MW 규모의 서남권해상풍력 3단계 확산사업 추진의사를 보이는 등 초법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게 풍력산업협회의 주장이다.

대규모 개발비용이 투입되는 해상풍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한전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논리 또한 국내 풍력사업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풍력사업이 더디게 추진되는 이유는 주민수용성과 복잡한 인허가 때문이다. 한전이 발전사업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수용성 확보와 인허가를 마친 프로젝트의 경우 국내 금융권을 통한 PF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풍력업계 입장이다.

하지만 한전이 제안하고 있는 회사채 발행을 통한 대규모 자금조달은 정부재정에 기대는 방식이라 볼 수 있어 향후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력계통 부족으로 풍력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풍력업계 현실을 고려한 전력계통 보강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풍력발전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REC·전기요금 등 영향 불가피
풍력산업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전이 발전사업 참여를 위해 풍력업계에 제시한 4가지 조건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첫째, 발전사업 규모와 범위 제한이다. 한전은 당초 40MW 이상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추진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풍력사업 규모에 비춰 볼 때 40MW 이상이란 단서조항은 별의미가 없다는 게 풍력업계 지적이다.

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풍력사업 가운데 육상풍력의 경우 9.5GW 중 74%인 7GW가 40MW 이상 프로젝트다. 해상풍력의 경우 비중이 더 커 총 3.1GW 중 약 95%인 3GW가 40MW 이상이다.

최근 한전이 400MW 이상 프로젝트로 사업규모를 제한하겠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이미 대부분 사업이 대규모로 개발되고 있는 만큼 사업규모에 따른 발전사업 진출은 의미가 없다는 게 풍력업계 입장이다.

둘째, REC 거래 제한이다. 한전은 REC 정산과 관련해 별도 시장거래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REC 가격변동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행 RPS제도 아래서 의무이행비용을 지급하고 있는 한전이 점차 증가하는 비용부담을 REC 기준가격 조정으로 해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풍력업계 주장이다. 결국 별도 REC 정산가격이 낮게 형성될 경우 기존 시장거래가격을 왜곡시켜 산업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회계·조직 분리를 통한 철저한 원가 검증이다. 한전은 전력판매와 발전사업 부문 간 회계·조직을 분리해 발전사업에 따른 비용이 전기요금 총괄원가에 반영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한전의 주장처럼 발전사업 투입비용을 전기요금 총괄원가에 반영하지 않더라도 회사채 발행, 사업 손익 등에 따른 비용 흐름이 결국 전기요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게 풍력업계 설명이다.

특히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라 설립된 6개 발전자회사가 이미 발전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전 조직 내에 별도 발전사업 조직을 두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넷째는 전력계통망 정보공개와 금지행위 관련 규정 강화다. 한전은 전력계통과 관련해 지역·기간별 접수정보와 여유정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계통접속 신청 순서에 따라 계통용량을 배분하고 있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하지만 한전이 전력계통 계획부터 운영까지 독점하고 있는 구조라 형평성에 어긋난 사업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풍력업계 주장이다. 지난해 연말 한전이 신안지역 해상풍력 개발사업을 발표했을 당시 이 같은 우려가 표면화됐다. 발전사업허가 조차 취득하지 않은 계획단계 프로젝트에 1.5GW의 계통용량을 우선 배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일반 사업자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은 공정한 경쟁을 기본으로 한 시장경제체제에 어긋난 행위”라며 “국내 전력시장 구조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전이 다시 발전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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