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외산 기자재 따라 풍력 고정가격 차등 웬 말
국산·외산 기자재 따라 풍력 고정가격 차등 웬 말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0.04.12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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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연구원, 풍력 LCOE 산정 보고서 내놔
IRR 5% 전제조건… 발전공기업만 풍력사업하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의 경제성을 분석하기 위해 LCOE 산정과 적정 REC 가격을 추정한 후 고정가격단가를 도출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의 경제성을 분석하기 위해 LCOE 산정과 적정 REC 가격을 추정한 후 고정가격단가를 도출했다.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내부수익률 5.01% 보장 기준 육상풍력 SMP+REC 합산 고정가격 kWh당 170.32원(국산 풍력터빈 적용 시)’

최근 에너지분야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한 연구보고서 초안에 풍력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균등화발전비용(LCOE) 산정을 비롯해 국산 풍력터빈과 외산 풍력터빈에 따라 고정가격단가(SMP+1REC)를 다르게 산출한 과정에 무리가 있어서다.

비록 초안이지만 이번 보고서 결과가 발전공기업과 민간사업자 간 체결하는 장기 고정가격계약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될 것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 수정 보완작업을 거치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성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REC 가격 하락으로 사업성 맞추기가 힘든 상황인데 외산 기자재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낮은 고정가격단가를 적용한다면 사실상 경영 간섭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풍력업계 중론이다.

특히 국산 풍력터빈과 외산 풍력터빈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의 구매계약이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해 자칫 WTO 제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외산 풍력터빈 사용 ‘SMP+REC 150원’
논란이 되고 있는 연구보고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6개 발전공기업 의뢰로 진행 중인 연구용역이다.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용 가격전망 분석연구(태양광 및 풍력발전)’이란 주제로 태양광과 풍력의 경제성을 분석하는 보고서다. 늦어도 5월 중으로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발전공기업이 참여하는 풍력사업에 정부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해당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면밀한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어왔다”며 “이번 연구용역은 프로젝트별 세세한 사업성 분석이 아니라 일종의 기준을 만드는 작업으로 향후 풍력개발사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경제성 평가 지표인 LCOE 산정과 적정 REC 가격을 추정한 후 고정가격단가를 도출했다. 풍력부문 주요 내용은 크게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으로 나뉜다. 이를 국산 풍력터빈과 외산 풍력터빈을 사용한 범주로 다시 분류한 후 각각의 LCOE·REC·고정가격을 제시했다.

우선 국산 기자재를 사용한 육상풍력의 경우 kWh당 ▲LCOE 172원 ▲REC 72.65원 ▲고정가격단가 170.32원으로 나타났다. 외산 기자재의 경우 ▲LCOE 156.1원 ▲REC 52.25원 ▲고정가격단가 149.92원의 추정치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장기 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할 때 국산 기자재를 사용한 사업자와는 kWh당 170.32원에, 외산 기자재를 사용한 사업자와는 149.92원에 하겠다는 것이다.

외산 풍력터빈을 사용했을 때 모든 수치가 떨어진 이유는 기자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 밝힌 육상풍력 투자비용 가운데 풍력터빈이 차지하는 비중은 48%다. MW당 국산 풍력터빈은 12억7,000만원이고, 외산 풍력터빈은 8억7,000만원 수준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육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용률 23% ▲IRR 5.01% ▲부채율 70%(10년) ▲이자율 4.76% ▲수익 177.67원/kWh 등을 국산과 외산 기자재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해상풍력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지만 예상보다 폭은 적었다. 국산 기자재를 사용한 경우 kWh당 ▲LCOE 272.9원 ▲REC 77.3원 ▲고정가격단가 271.5원(복합가중치 2.25 적용)으로 나타났다. 외산 기자재의 경우 ▲LCOE 248.9원 ▲REC 63.4원 ▲고정가격단가 240.3원(복합가중치 2.25 적용)이 나왔다.

해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한 전제조건은 육상풍력과 모두 동일하고 이용률만 31%로 다르게 적용했다. MW당 국산 해상풍력터빈은 20억원, 외산 해상풍력터빈은 12억원 정도로 조사됐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연구보고서 작성 취지가 풍력개발에 따른 사업성을 살펴보기 위한 표준을 만드는 것이라 했지만 초안만 놓고 보면 국산 풍력터빈을 장려하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며 “국산 기자재 사용에 따른 비용을 보전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외산 기자재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고정가격단가를 보장해야 공정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실적자료 부실… 신뢰성 의문
풍력업계는 이번 연구보고서 초안에 담긴 LCOE 산정 과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산 기자재와 외산 기자재에 서로 다른 고정가격단가를 책정하려다보니 무리한 기준들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우선 국산 풍력터빈 설치에 따른 육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해 적용한 연도별 투자비용 실적자료가 부실한 점을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4~2018년 사이 국내에 준공된 육상풍력단지 가운데 국산 풍력터빈을 사용한 프로젝트를 선별해 평균 투자비용을 산출했다.

그런데 연도별 세부 설비용량이나 사업명을 제외한 채 kW당 평균 투자비용만 표기해 놨다. MW 단위로 바꾸면 ▲2014년 27억원 ▲2015년 23억원 ▲2016년 28억원 ▲2017년 23억원 ▲2018년 30억원 수준이다. 2015년과 2017년 평균 투자비용이 유독 낮게 나타나면서 5년 평균값이 26억원 규모로 떨어졌다. 평균값에 왜곡이 생길 수 있는 차이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육상풍력 투자비용이 감소하는 추세인데 국내의 경우 일정한 흐름 없이 들쑥날쑥한 상황”이라며 “샘플이 많지 않아 정확한 원인을 찾기 쉽지 않지만 입지여건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풍력산업협회의 국내 풍력설비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4~2018년 동안 국산 기자재를 설치해 상업운전에 들어간 풍력단지는 33개 단지 총 452.25MW 규모다. 세부적으로 ▲2014년 33.3MW(3개 단지) ▲2015년 102.55MW(9개 단지) ▲2016년 145.85MW(9개 단지) ▲2017년 53.6MW(7개 단지) ▲2018년 116.95MW(5개 단지)가 준공됐다.

육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한 전제조건
육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한 전제조건

국산 vs 외산 경제성은?
LCOE를 계산하는 산식을 보면 일단 분자에 초기투자비·운영유지비·금융비용·할인율 등이 들어간다. 기준이 되는 분모에는 총 발전량·할인율 등이 포함된다. 분자와 분모 모두에 들어가는 할인율은 프로젝트 내부수익률(IRR)로 봐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할인율보다 IRR이 크면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은 양호한 것으로 본다.

총 발전량이 분모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값이 커질수록 LCOE 수치는 자동적으로 작아지게 된다. 즉 설비용량이 작은 풍력터빈 여러 기를 설치하는 것보다 대형 풍력터빈 몇 기를 설치할 경우 시공비용을 줄이면서 총 발전량을 높이게 돼 LCOE 값은 떨어지게 된다.

연구보고서에 담긴 육상풍력 LCOE 산정을 위한 전제조건 가운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용률 23% ▲IRR 5.01% ▲이자율 4.76% 등의 기준이다.

풍력발전 이용률은 풍력터빈이 생산하는 실제 발전량을 이론상 최대 발전량으로 나눈 값으로 발전효율을 의미한다. 같은 모델이라도 설치되는 장소와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기술개발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 풍력터빈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LCOE 하락을 이끄는 핵심요인 중 하나다.

풍력업계에 따르면 국산 풍력터빈의 기술수준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기술격차가 존재한다. 총 발전량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이용률 차이는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수의 풍력단지를 개발·운영하고 있는 민간사업자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외산 기자재 성능이 우수하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 초안에는 국산과 외산 모두에 동일한 이용률이 적용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보고서 초안은 사업성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요약본으로 전제조건이 되는 요소들의 자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며 “최종 보고서에는 이용률에 대한 세부내용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용률과 관련한 내용이 어느 정도 보완될지 아직 미정이지만 결과적으로 고정가격단가를 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준인지가 풍력업계의 관심사다.

LCOE 산정 조건으로 IRR 5.01%를 적용한 것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발전공기업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인 적용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발전공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전과 달리 발전공기업이 직접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민간사업자와 공동개발 형태로 추진하는 사업이 많은 만큼 일방적인 IRR 적용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민간사업자는 개발을 담당하고, 발전공기업은 REC 구매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공기업의 사업성 판단 기준을 민간사업자에게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산업부, 기승전 ‘국산’… 풍력산업 후퇴 우려
이번 연구보고서는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떨어진 REC 가격과 무관하지 않다. 발전공기업과 민간사업자 간 고정가격단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나온 수습방안이란 게 풍력업계 시각이다.

발전공기업 입장에서 고정가격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근거자료를 마련해 협상 주도권을 가져가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산 풍력터빈 사용을 유도할 수 있는 조건을 보고서 내용에 녹여내 산업부의 국산 기자재 확대 의지를 뒷받침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경쟁과 무역을 기조로 한 시장경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사업자 선택에 영향을 줄 계약조건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발전공기업은 시장에서 함께 뛰고 있는 이해당사자니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 전체 풍력산업을 살펴야하는 산업부가 이 같은 방안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외국기업의 국내 제조공장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국산과 외산 기자재를 차별화하면 어느 기업이 국내투자를 검토할지 의문”이라며 “우리보다 해상풍력 개발에 늦게 뛰어든 대만의 해외기업 유치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국내 풍력시장 환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부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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