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서가 충만한 나라…
사랑과 용서가 충만한 나라…
  • EPJ
  • 승인 2009.03.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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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의 EP시사저널 ⑥]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다. 한동안 온 나라가 큰 인물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선종(善終)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해 찾아보니 선한 인생을 살다 복되게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추기경을 잃은 슬픔과 비례해 온 나라와 국민들의 가슴은 고인이 남기신 큰 뜻을 되새김하며 슬픔을 넘어 사랑과 실천이라는 크고도 촉촉한 행복감에 한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세상사의 번잡과 팍팍하고 억척스런 우리네 삶이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다소나마 자신의 인생과 지나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사람은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 사람의 무게감과 존재의 큰 의미를 더 느끼게 되나 보다. 비유가 맞지는 않지만 ‘사람이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훨씬 크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한마디로 모든 한국인들은 그분의 일생을 곱씹어 보며 어찌하면 이 나라가 또 자신의 삶이 값어치 있고 이웃에 감사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을 듯하다.

선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다시 한 번 큰 구도적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이 복잡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선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복되게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욕먹지 않고 살기도 힘든데 어찌해야 그리된단 말인가?

여기에 그분이 추구하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한다’는 말씀은 한마디로 함부로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말도 아닌 듯하다.

장례 기간 동안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마의 만행 수사 보도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추기경의 장례를 전후해 이 나라에 잔잔히 퍼져 갔던 ‘사랑실천 정신’이 크게 승화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보도에 의하면 추기경의 고향에 기념관을 몇 백억원을 들여 조성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장례식마저 가장 검소하게 하라고 했던 분에게 사죄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실천 정신’ 온 나라에 잔잔히 퍼져 흐뭇

갑자기 이상한 데로 이야기가 흘렀지만 한분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이 세상에 행복이 찾아온 듯한 느낌으로 지냈던 몇 주간의 시간이 참 고맙기만 하다.

전쟁과 고난, 민주화와 가난, 그리고 ‘격동의 시대’ 모서리마다 고뇌하고 탄식하고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를 살다 가신 그분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분에게 연민이 들기도 한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말씀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그분을 생각하며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필자가 대학 졸업 후 중등교원 발령을 받고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됐을 때 당시 시 교육청에서 있었던 신임교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어느 장학사께서 강연도중 소개해 주셨던 이야기다. 부패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민중 반기로 일어났던 4.19 당시 부산동래고보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4.19는 젊은 학생들이 주축이 돼 반정부 시위로 전국을 들끓게 했던 바 부산 지역에서도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데모의 열기가 극에 달했을 무렵 학교 당국에서는 ‘원칙적으로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의 데모를 반대하거나 제지했다.

그러나 피 끓는 젊은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그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학내에서 교사들과 학교 당국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대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학생들은 일반 교사들의 제지를 물리치고 급기야 교장선생님의 방에까지 들이닥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흥분해 이성을 잃은 학생들이 교장실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고 교장선생님의 책상을 무엇인가로 내리쳐 구멍이 뚫리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데 이 아수라장의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황쪹쪹 교장선생님은 책상에 말없이 않아 눈을 꽉 감은 채 있었다.

‘모든 이를 위해’ 실천 ‘황 교장 일화’ 가슴에

당시 시대상황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4.19가 진정되고 난 후 학교에서는 주동 학생들 중 교장실에서 난동 및 파손 행위를 한 학생들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벌어졌다.

징계위원으로 자리했던 모든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해당학생들의 패악을 일일이 질타하며 퇴학 등 중징계할 것을 결의하고 마지막으로 황 교장선생님의 의견을 묻게 됐다.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겨 계셨던 황 교장께서 했던 말씀은 이러했다.

“나는 그 학생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으므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결국 당시 징계위는 그저 형식상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학생들은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초임교사로 부임한 필자에게는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강연이었으며 이후 몇 년 간의 고교선생 재직 시절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당시 황 교장님은 말년에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지켜보면서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다시 생각해봤다. 사랑은 사랑에서 온다고 했던가?

한 종교인의 죽음으로 울려 퍼진 이 아름다운 메시지가 우리 모든 국민들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오래 남기를 그리고 조그마한 실천으로 승화되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그리해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미소가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빌어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 중에 돌아가신 후 이렇게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지도자가 언제나 나올 것인가”라고. 정치와 종교와 도덕과 우리네의 전통 미덕이 하나가 돼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늘 행복한 사회에서 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신구대 교수·채향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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